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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06. 포르투, 어색한 발걸음…까미노 여운이…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어제 머문 호스텔은 싼 가격에 비해 무척 쾌적하고 좋지만 어제 하루 밖에 묵을 수가 없었다. 오늘이 금요일인데 주말 예약이 꽉 차있다는 거다.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일단 제공되는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을 한 뒤 게스트하우스에서 소개해준 다른 호스텔로 가기로 한다. 순례자든 여행자든 오늘하루 머리를 눕힐 지붕을 찾는 게 가장 큰 일이긴 하다. 우비를 입고 빗속을 걷는 것이야 이골이 나있지만 까미노도 끝났는데 좀 처량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소개받고 간 호스텔도 예약이 차서 거기서 다시 소개해주는 다른 호스텔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과 모레 이곳에 머물기로 한다. 어렵게 숙소를 구한다. 빗속에 숙소 찾아 돌아다니느라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갔다. 그래도 잘 곳을 얻은 걸 위안으로 삼는다. 아직 체크아웃 시간도 아니라서 배낭만 맡기고 나온다. 국경을 넘어 대도시에 들어와서인지 느낌이 사뭇 다르다. 대도시에 처음 온 시골쥐 같은 느낌이다.


부슬비가 간간이 내리는 거리로 나선다. 우선 호스텔에서 포르투 지도를 하나 얻어서 대략 설명을 듣고 나오긴 했는데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잘 모르겠다. 순례자에서 여행자로 돌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포르투(Porto)의 중심 리베르닷 광장(Praca da Liberdade)으로 나온다. 포르투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고 포르투갈이라는 국가 이름도 이 도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포르투(porto)나 리스본(Lisbon)은 언덕으로 이루어진 구시가가 유명하다. 언덕을 수시로 오르내리며 걸어야 하는 도시다. 까미노를 마치고 온 우리에겐 딱 맞는 도시다. 게다가 배낭을 호스텔에 두고 돌아다니니 빗속에서도 발걸음은 날아갈 것 같다.


포르투 시내에는 예쁘고 아기저기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들이 부럽긴 해도 이국적인 도시 풍경이 새롭다. 날마다 걸어야만 하는 일상이던 까미노에서 빠져 나오기가 힘이 든다. 산티아고, 피스테라까지 걸었던 대장정의 여운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낯선 거리를 그저 천천히 둘러볼 뿐, 아직은 뭘 해야 하는 건지, 꼭 해야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포르투에선 하루 이틀만 머무는 사람도 많다는데 까미노를 걷고 난 케이와 나는 이곳 포르투에서 몸도 마음도 쉬어가기로 한다.

발길 닿는 대로 빗속을 걷는다. 광장에서 어딘가로 걷다보니 도루강(Rio Douro)이 훤히 보인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정처 없이 걷는다. 꼭 무엇을 봐야한다는 의무감은 하나도 없다. 이젠 순례자가 아니라 여행자라는 달라진 신분(?)에 적응한다는 의미도 있고, 비 내린다고 호스텔에서 무작정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는 건 아깝다는 생각도 있다.


유명한 상벤투역(Estasao Sao Bento)이 나온다. 지도도 제대로 보지 않고 무작정 걸어보는 길인데도 명소가 튀어나온다. 상벤투역은 내부 때문에 더욱 유명한 역이다. 포르투갈의 역사적 사건을 묘사한 2만개의 아줄레주(Azulejo : 포르투갈의 타일예술)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푸른 타일을 둘러보는 몇몇 사람들은 아마도 관광객일 것이다.

역 안을 기웃거려 본다. 관광객들에게는 역사가 그려진 푸른 타일이 신기하지만 기차들이 대기하고 사람들이 오가는 보통의 기차역이다. 일상의 중심에 역사와 유적이 살아숨쉬는 모습이 보기 좋다. 지나다 우연히 오게 된 곳이니 내일쯤 다시 오게 될 것이다. 오늘은 비를 피하고 둘러보는데 의미를 둔다. 머릿속은 까미노의 걸음으로 가득하고 여행지에서의 호기심이나 감흥이 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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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확인하지 않고 들어간 성당에서 잠시 비를 피한다. 산티아고 길의 걸음을 멈춘 지 겨우 이틀째, 까미노의 감동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마음이 포르투의 거리를 배회하게 하지만 성당의 경건함과 엄숙함은 위로가 된다. 말할 수 없이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 맨 밑에 누워 계시는 헐벗은 예수님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화려한 천사와 성인들의 조각보다 가장 낮은 곳에 가장 초라하게 누워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두 손을 모으게 한다.

이번 여행길에서 세상의 몇 안되는 멋진 풍경, 멋진 건축물을 보고 여러 사람들과 만났다. 그리고 산티아고로의 한 달 간의 긴 걸음이 끝난 지금, 여기 포르투에는 비가 내리고 마음은 까미노의 여운이 남아 잔잔한 파문이 그치지 않는다.


성당에서 나와 거리를 걷는다. 이곳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여러 길 중 포르투갈이 지난다. 까미노 표식을 이곳에서 만나니 걸음이 끝났어도 너무나 반갑다. 며칠 후면 다시 포르투갈길을 걸을 케이도 신기하게 화살표를 쳐다본다. 이제 여행 속으로 들어가는 나와 다시 까미노를 걸을 예정인 케이는 같은 까미노 표식을 봐도 느낌은 다를 것이다. 나에겐 방금 지나온 추억이고 그에겐 추억이며 코앞의 미래일 테니까.

언덕이 많은 포르투의 구시가 거리에는 트램이 운행되고 있다. 날씨 때문인지 사람은 별로 없어도 옛 건물, 돌로 된 바닥과 트램이 지나가는 거리에 비가 내리는 모습은 아름답고 이채롭다.


설상가상으로 빗방울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굵어진다. 강변에서 광장을 향해 오르다가 비도 피할 겸, 허기도 채울 겸 식당에 들어간다. 포르투갈은 스페인에 비하면 물가가 싸긴 하다.

까미노를 걸으면서 먹었던 것에 비하면 진수성찬으로 느껴지는 음식들이다. 단, 먼저 서빙된 물, 빵, 올리브, 엠빠나다 같은 것들은 스페인에서는 음식가격에 포함되는데 포르투갈에서는 먹는 만큼 별도로 계산이 된다.

식사를 하고 체크인 시간에 맞춰 서둘러 호스텔로 돌아간다. 짐을 풀고 몸을 씻고 비를 피할 곳이 있다는 게 안도가 된다. 까미노였으면 비가와도 걸었을 텐데 여행 중엔 비오는 것은 참 별로다.


시간도 많이 지나고 비가 많이 내려 밖에 나가기도 힘들어서 와이파이 잘 터지는 공용공간에 앉아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데 혼자 여행 중이라는 한국인 여행자가 말을 건다. 인도를 좋아한다는 이름 모를 그녀와 두어 시간 동안 여행이야기를 나눈다. 두 달의 일정으로 유럽여행을 왔는데 왠지 여행이 재미없다면서 인도이야기를 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 인프라가 잘 되어있는 유럽의 대도시들은 여행하기 쾌적하고 볼거리 가득하지만 뭔가 여행지에서 기대하는 반전은 없다. 인도에선 사기꾼이든 보트맨이든 기차역에서 만난 일반인이든 호기심을 드러내고 여행자를 가만히 두질 않으니 그것이 귀찮으면서도 때로는 재미가 있긴 하다. 그녀와 이야기 하는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여전히 발목은 부어있고 발바닥은 쿡쿡 쑤셔온다. 비가 내리는 날씨를 핑계 삼아 뒹굴면서 편안한 저녁을 보낸다. 포르투의 역사지구는 옛 풍경을 간직한 아름다운 도시였고 이젠 순례자가 아니기에 짐 없는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여행자로서의 호기심을 되찾기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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