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구민정 기자] 한국은행, 서울역,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마포구 래미안 푸르지오 아파트. 이들 건축물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조선 총독의 글씨를 새긴 머릿돌이 21세기인 지금도 버젓이 남아 있는 장소라는 공통점이 있다.
7일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이 연구소의 이순우 책임연구원은 최근 작성한 ‘조선 총독들이 남긴 오욕의 흔적들- 식민 통치자들의 휘호가 새겨진 정초석(定礎石ㆍ머릿돌)과 기념비’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우리 주변 곳곳에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혔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건축물과 조형물의 머릿돌과 표시석에 적힌 글씨가 조선 총독 등이 썼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이 연구원은 사례를 수집해 현황 파악에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 총독의 휘호가 새겨진 서울 중국 한국은행 본점의 머릿돌(정초석)이다. 이 머릿돌에 새겨진 휘호는 안중근 의사가 처단한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쓴 것. 조선통감부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1906년 대한제국을 완전 병탄할 목적으로 설치한 감독기관으로, 사실상 조선총독부의 전신이다.
1920년대 옛 경성역를 신축할 당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의 글씨를 받아 부착한 서울 중국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사) 머릿돌도 글쓴이가 누구인지 알리는 부분은 뭉개졌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옛 대법원)에도 1927년 당시 경성법원청사를 신축하면서 역시 사이토 총독의 글씨로 제작한 머릿돌이 또렷한 글씨체로 남아 있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선농단 터에 세워졌다가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옮겨진 잠령공양탑 비석의 앞면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고수(皐水)’라고 쓰여있는데 이 또한 사이토 총독의 호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에는 ‘흥아유신기념탑(興亞維新記念塔)’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태평양전쟁을 찬양하는 의미를 담아 세운 것으로, 당시 미나미 지로(南次郎) 총독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연구원은 “조선 총독의 글씨가 담긴 머릿돌 등 조형물은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발견할 수 있다”며 “오래된 기념 식수 옆에 박힌 말뚝에 쓰인 글씨도 일제의 고위 관료가 쓴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 마포경찰서 인근에 새로 지어진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아파트 단지 진입로 끝자락에 설치된 ‘선통물(善通物)’이라는 표시석<사진>도 이러한 기념 조형물 중 하나다. 안내판에는 “선통물 표시석은 이곳에 옛 물길인 선통물천(善通物川)이 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선통물천은 물건이 먼저 통과하는 개천이라는 뜻”이라는 표시석의 역사적 의미와 함께 표시석이 원형 그대로 복제돼 지금의 자리로 이전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연구원은 “이 표시석에 글씨를 적은 사람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 총독이었던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이지만 이런 설명은 누락돼 있다”며 “이곳에 흘렀던 물길도 선통물천이라고 통용된 적이 없다. 안내판에 틀린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 표지석 왼쪽에는 ‘조선 총독 우가키 가즈시게’라고 한자로 써있다.
이 연구원은 “일제가 마포배수터널을 조성할 때 입구 상단에 ‘선통물(善通物)’이라고 쓴 석판을 만들어 부착했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겼다”며 “선통물천이라는 표현 자체가 일제강점기 산물인 셈이고, 조선 총독의 글씨를 굳이 돈 들여 복제품까지 만들어 전시해야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식민시대의 잔재라고 무조건 없애는 것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아픈 역사의 흔적이 서울 곳곳에 남은 것을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이 연구원은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일제가 남긴 흔적도 우리 역사니 보존은 해야 한다”며 “다만 우리 역사를바로 알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교육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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