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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열 기자의 알쏭달쏭 의료상식⑫] ’조현병 환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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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태열 기자] 얼마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앓고있던 질환이 경찰조사결과, ‘조현병(구 정신분열증)’으로 밝혀졌다. 여성이 피해자가 되면서 ‘여성혐오’ 범죄인지 여부도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고 직장까지 다녔던 조현병 환자가 혹시 내 주위에도 있어 나에게도 불시에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지 않겟느냐는 것이다.

이 사건이후 정부와 여당은 조현병 환자에 대한 전수조사와 환자 치료를 추적·관리하는 인신보호관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한다. 하지만 이같은 당국의 대처에 의료인들은 ‘한마디로 히틀러적인 발상으로 본질은 도외시한 근시안적인 정책’이라고 성토한다. 당국의 조치는 일상생활에서 착실히 치료를 받고있는 조현병 환자까지 일단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겠다는 의도이기때문이다.

과연 조현병이 그정도로 심각하고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질환인가? 

조현병이란 말, 행동, 감정, 인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복합적인 증상들이 나타나는 정신병적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 병에 걸리게 되면 사람들의 말소리 등과 같은 환청이 들리기도 하고, 내가 우주의 사령관이라든지, 이 세상은 곧 망할거라는 등의 망상이 생기기도 해서 흔히 사람들이 “미쳤다”라고 말하는 정신질환의 대표격이기도 하다.

조현병은 인구의 약 1%에 해당하는 빈도가 높은 질환으로 세계 각지에서 실시된 조현병의 역학연구에서는 1000명당 3명에서 10명 사이의 유병율이 보고되고 있다. 발병율의 남녀간 차이는 보이지 않으나, 발병 연령이 남자는 15-25세가 가장 많은 반면에 여자는 남자보다 약 10년 정도 늦게 나타나고 질병의 예후는 여자가 남자보다는 좀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조현병의 유병율과 발병율은 서양과 동양,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과 같은 인구특성, 지역 및 문화적 차이에 관계없이 일정하다. 

문제의 핵심은 조현병은 적절한 의료환경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환이지 감시하고 관찰해서 해결되는 질환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신건강전문의들의 하나같은 견해는 “조현병 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환경 마련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자는 약 5년전쯤 한 다국적제약사의 조현병 치료제의 치료사례를 취재하기위해 일본 지바현의 히다클리닉이라는 조현병 전문클리닉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조현병 환자인 히라바야시 유코(당시 32세 여성)씨는 낮에는 장애인을 돕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같은 조현병 환자인 그녀의 남편 역시 삽화를 그리거나 스티커를 만드는 평범한 디자이너다. 이들 부부는 2주일에 한 번씩 동네 병원을 찾아 조현병 치료제 주사를 맞으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가끔 긴장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1시간이상 대화를 나누면서 정상인과 다른 특별한 이상징후는 없었다. 

일본에서는 지난 2000년에 정신병 환자의 인권 문제가 부각된 적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조현병 환자의 치료 정책을 ‘격리’에서 ‘통원’으로 바꿨다. 의료 권역을 300여 개로 나눈 뒤 권역별로 병상 수를 제한했고 병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정신분열병을 ‘통합실조증’으로 바꿨다. 그 결과 히다 클리닉 같은 지역 내 정신병원은 통원치료를 받는 환자가 확 늘었다. 당연히 지역 주민은 불만을 쏟아냈다. 정신병력이 있거나 치료 중인 사람이 같은 동네에 사는 게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역풍을 맞은 히다클리닉 히다 히로히사 원장은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1년에 두 차례씩 병원에서 음악회를 열어 동네 아이까지 모두 초대했다‘라며 “실내공간도 카페같이 꾸미고 증상이 심할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교환하고 주사 맞는 것을 잊지 않도록 스탬프 카드를 만들어주는 등의 작은 노력이 모여 조현병 주사 지속률이 95.7%에 달하게됐다”고 말했다. 조현병은 꾸준히 약을 복용해 재발을 막는 것이 중요한데 지역 클리닉과 동네 주민이 서로 힘을 합치고 인내하면서 만들어낸 결과이다. 조현병은 약 복용을 중단하면 1년 이내에 70% 이상 재발한다고 알려져있다.

일반인의 편견은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이 높다는 오해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검찰청에서 발간하는 ‘범죄백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다. 실제 일부 성격장애 환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는 지나칠 만큼 소심하다.

우리 옆집에 조현병 환자가 산다면 어떨까? 물론 썩 유쾌한 일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중에 어느 누구도 조현병 같은 질환에 걸리지 않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그들은 전염병 환자도 아니고 단지 치료를 하면 정상인처럼 살 수있는 우리의 이웃일뿐이다. 조현병 환자는 언뜻 보기에 인격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나 내면은 아주 섬세하고 마음속으로 괴롭고 답답한 점이 많으므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이 점을 잘 이해하고 헌신적인 애정으로 대하여야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고 치료에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들 환자들을 ‘위험하고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하지말고 격리된 대규모 정신병원이 아닌 ‘지역사회가 보듬고 같이 살아가려는 이해심’이다.

/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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