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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아가씨’ 박찬욱 감독, “해피엔딩 의외라고요?”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그의 별명은 ‘깐느박’. 세계 3대 영화제인 칸(깐느) 영화제에 단골손님처럼 드나드는 한국의 대표 영화인, 박찬욱(53) 감독 이야기다. ‘올드보이’(2003), ‘박쥐’(2009) 처럼 어딘가 찜찜하고 대놓고 파격적인 영화를 선보여 온 그에게 이렇게 ‘깜찍한’ 별명이라니.

그만큼 그는 국내 영화팬들에게 익숙한 얼굴이고 친근한 선생님 같은 이미지다. 오죽하면 올해 4월 개봉한 영화 ‘대배우’에서는 박찬욱 감독을 패러디한 캐릭터 ‘깐느박’까지 등장했을까. 관객들은 ‘깐느박’의 등장 장면에서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올해도 칸 영화제를 다녀온 그를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영화 ‘아가씨’ 개봉을 앞두고 박찬욱 감독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자기 본연의 욕망을 찾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라는 말로 영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명쾌한 해피엔딩…안 믿었다고요?= 박 감독의 신작 ‘아가씨’(6월1일 개봉)는 2009년 ‘박쥐’ 이후 7년 만에 내보이는 한국 장편영화다. 그 사이에는 친동생 박찬경과 아이폰으로 찍은 단편영화 ‘파란만장’(2010)을, 할리우드 진출작인 ‘스토커’(2013)가 있었다.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 미국 갔을 땐 제작 시스템이 많이 다르다고 느꼈는데 다시 와서 보니까 한국 환경도 많이 변했더라고요.”

박 감독이 새 작품으로 선택한 것은 영국 소설가 사라 스미스가 쓴 ‘핑거스미스’의 두 여성 이야기. ‘올드보이’에서 함께했던 임승용 프로듀서가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화를 제안했다. 박 감독은 살아 숨 쉬는듯한 캐릭터 묘사와 놀라운 반전에 매료돼 각색에 나섰고 ‘아가씨’는 마침내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는 ‘아가씨’가 공개되기 전부터 “명쾌하고 아기자기하고 해피엔딩인 영화”라고 소개했다. 그래도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박 감독의 영화세계는 항상 어딘가 심오하고 복잡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일을 벗은 ‘아가씨’는 그의 말대로 명명백백한 영화였다. “장르영화로서 플롯이 뚜렷하고, 명백한 권선징악 이야기잖아요.” 그가 말했다. “영화에서 풀리지 않은 감정이나 의문이 남지 않는 영화라는 점에서 명쾌하다는 말이었어요. 실제로 해피엔딩이기도 하고요.” 

[‘아가씨’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일까.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박 감독에 대해 “아티스트가 아닌 척 아트를 한다”고 평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언제나 상업영화를 만들어 왔다”고 단언했다. “단지 어떤 때는 통하고 어떤 때는 안 통했을 뿐이죠. (웃음)”

그는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독자’로서 원작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영화에 녹이려고 했다.

“‘핑거스미스’가 가진 통속문학스러움이 있어요. 어떤 캐릭터를 응원하고 어떤 캐릭터를 저주하고 싶다는 호오가 분명하게 생기죠. 읽다 보면 또 내가 보고 싶은 결말이라는 게 떠오르고요. ‘이렇게 풀리면 좋겠다’는 희망인 거죠. 이것에 근거해서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좀 더 대중영화의 성격을 띠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친절해진 박찬욱’, 대사로 말하다= ‘아가씨’는 확실히 그의 “과묵한 편이었던 전작”들에 비해 대사도 많고 등장인물도 많다. 대사나 서사보다는 분위기와 미장센 등의 연출기법이 두드러졌던 그의 전작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아가씨’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한번쯤 대사가 많은 영화를 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내가 한국영화를 볼 때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대사의 문학성이 부족하다는 점이었고요. 생생하고 솔직한 대사들도 좋지만, 구어체가 아닌 문학적인 대사들, 예를 들면 비유나 수사, 중의적인 표현을 사용한 대사를 써 보고 싶었어요. 우아한 척 하면서 역겨운 말을 하고, 말 속에 뼈가 있고….”

이런 욕심이 원작 소설을 고르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다. 원작에서의 배경인 영국 빅토리아 시대 런던은 1930년대 조선과 일본으로 옮겨졌다.

“아무래도 문학적 대사들이 현대 일상적 풍경이라면 이상하게 느껴질 테고, 시대가 다른 설정이라면 더 쉽겠다고 생각했죠.” 박 감독의 첫 시대극이 탄성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 대사를 사용해보려고 이 원작을 골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 기회를 갖기 위해서요.”

일본어 대사도 한몫한다. 관객들이 ‘아가씨’의 일본어 대사를 듣는 동안 화면에는 자막이 펼쳐진다. “관객들은 자막을 읽게 되잖아요. 그 순간 그건 소설이 되어버리는 거죠. 문학처럼.” 박 감독의 치밀한 계산이었다. 

[사진= 영화 ‘아가씨’ 개봉을 앞두고 박찬욱 감독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자기 본연의 욕망을 찾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라는 말로 영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여성들의 성장…‘여성 3부작’ 종지부= ‘아가씨’ 포스터 속 주인공은 네 명이지만 이야기의 주축은 두 여성 캐릭터다.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와 하녀 숙희(김태리)의 속고 속이는 관계, 그리고 여기서 솟아난 풋풋한 사랑의 이야기다. 이들을 둘러싼 남성 캐릭터인 사기꾼 백작(하정우)와 아가씨의 후견인(조진웅)은 비열하거나, 변태적이거나, 비뚤어진 욕망을 가진 인물들로 그려진다.

소녀들의 성장 이야기를 다룬 전작 ‘사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스토커’의 연장선상에 ‘아가씨’를 놓고 보면 새로운 3부작이 완성된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2005)를 포괄하는 ‘복수 3부작’에 이은 또 다른 3부작이다.

박 감독은 “계획한 건 아니지만 그만큼 여성의 성장이라는 이슈가 나에게 중요한 관심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영화 ‘아가씨’ 개봉을 앞두고 박찬욱 감독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자기 본연의 욕망을 찾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라는 말로 영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아가씨’의 동성애 코드도 박 감독이 “꼭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고 했다.

“‘같은 성(性)인데 좋아해도 될까?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이런 고민이 전혀 없는 이야기, 억압이나 차별, 인정받기 위한 투쟁조차 없는,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돌아볼 필요도 없는 여성들의 사랑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를 만들고 나서야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구체화됐다며 더디게 말을 이어나갔다.

“늘 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는 채로 영화를 만들어 왔어요. 항상 다 만들면 차츰차츰 알게 돼요. 지금 느끼는 것은, 억압에서 벗어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걸 넘어서서 자기 본연의 욕망을 찾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 이야기들이었지 않을까요.”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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