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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①] [단독] 경찰엔 ‘증오범죄자 리스트’조차 없다
-범죄 동기 중 혐오범죄 여부 통계화 않고 있어
-부랴부랴 혐오범죄 논란 일자 학술연구 지시
-미국의 경우는 혐오범죄 분류 자료작성 의무화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우리나라에는 아직 의도를 가지고 한 혐오 범죄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은 여성 혐오 사건이 아니다”며 이같이 밝혔다. 현재까지 혐오 범죄 현황을 파악하고 있었으나 발생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실제로 경찰은 범죄 동기 중 혐오 범죄 여부를 확인, 통계화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부랴부랴 혐오범죄 실태 파악을 위한 연구에 들어갔다.

경찰청 관계자는 25일 범죄 통계 상 범행 동기와 관련 “특정 집단 중 불특정 다수에 대한 혐오, 증오에 의한 범죄인지는 파악해 코딩하지는 않는다”라고 밝혔다. 현재 경찰청 범죄 통계에서 범행 동기 분류는 ▷물질적 욕구 ▷사행심 ▷보복 ▷가정불화 ▷호기심 ▷유혹 ▷우발적 ▷현실불만 ▷부주의 ▷기타 ▷미상 으로 구분될 뿐 증오나 혐오를 별도로 파악하지 않는다.

“수사 과정에서 여성이나 성적 취향, 외국인 등에 대한 혐오가 확인될 경우 수사관들이 어떤 동기로 분류하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현실 불만이나 기타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에서 늘어가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혐오 범죄가 피의자 자신의 실직 상태나 불안한 가정 생활에 의한 불만 등 다른 범행 동기와 구분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은 우리 사회에 소수자에 대한 혐오 범죄의 위험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경찰은 “현재까지 혐오범죄는 일어나지 않았다”면서도 통계 상 혐오범죄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건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보존을 위해 옮겨진 뒤 강남역 10번 출구의 모습.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전문가들은 혐오나 증오에 의한 범죄를 정확한 통계에 기반해 확인해야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소수자 인권문제를 다뤄온 류민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증오범죄가 실제 얼마나 자주, 어떤 방법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지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대응 역시 피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1990년 의회에서 증오범죄통계법을 통과시킨 후 법무부 장관에게 혐오범죄가 확실할 경우 의무적으로 자료를 작성토록 했다. 현재 연방수사국(FBI)가 해당 통계를 전담해 작성하고 있다.

혐오 범죄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없고 이를 확인할 구체적 수단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치안정책연구소 관계자는 “편견이나 선입견에 의한 범행 동기는 피의자가 직접 말하는 경우가 드물고 그 기원이 숨겨져 있어 심리학적 전문성이 부족한 일선 수사관들이 혐오범죄다 아니다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전문가들과의 논의를 거쳐 혐오범죄 체크리스트 등을 만들어 배포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혐오범죄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강 청장은 최근 경찰대학 부설 치안정책연구소에 혐오범죄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지시했다. 치안정책연구소는 조만간 기본 계획을 세우고 혐오범죄의 개념과 유형, 외국 사례 등을 연구할 계획이다.

차별금지법 등 혐오범죄를 정의하고 가중처벌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 일반적 폭행과 달리 운전자 대상 폭행이 가중처벌 되는 것처럼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등이 제정되면 해당 법 위반으로 처벌하거나 특별범죄가중처벌법에 의해 가중처벌할 수 있고 죄명 또한 따로 분류해 통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9개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 등이 차별 금지법 제정을 추진했으나 오는 29일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관련 법안은 자동폐기될 예정이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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