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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김동성, 평창, 박태환
2002년 2월의 미국 유타주 솔트레크시티는 기억에 남도록 아름다운 곳이었다. 눈부시게 하얀 눈을 어깨에 두른 록키산맥이 도시를 평온하게 감싸고 있었다. 도시 전체는 조용하고 깔끔했고 시민들은 구김없이 친절했다.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스키 휴양지다웠다. 하지만 동계올림픽 취재를 위해 찾은 그 도시를 떠날 즈음엔 아름다운 풍광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올림픽 기간 중 느껴야 했던 무력감과 허탈함 때문이었다.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김동성이 맨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부당한 실격 판정으로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에게 금메달을 뺏긴 사건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한국 선수단은 국제빙상연맹(ISU)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항의하고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지만 메달을 되찾는 데는 실패했다. 사흘 만에 모든 항의의 노력을 접었다. 순위와 메달 경쟁에만 집착했던 한국 스포츠의 수준과 빈한한 외교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후 한국은 월드컵 축구를 개최하고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자정이 넘도록 CAS의 심리 결과를 기다리다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던 그 날 솔트레이크시티의 차갑고 낯선 느낌은 한국 스포츠의 위상에 여전히 물음표를 남겼다.

다시, 한국 스포츠에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갑작스럽게 평창올림픽의 수장이 바뀌고 수영 박태환이 국가대표 선발 문제로 CAS에 중재 신청을 하면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취임 1년 10개월만에 사퇴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선임된 이희범 조직위원장은 지난 20일 취임 간담회에서 “역사에 길이 남는 성공한 올림픽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함께 참석한 구닐라 린드베리 IOC 조정위원장도 “좋은 리더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고 축하했다. 취임식 분위기와 해외 언론과는 다소 온도 차가 있었다. 올림픽 소식을 다루는 어라운드더링스는 “평창이 초보에게 수장을 맡겼다”고 했고 AP통신은 “린드베리가 평창의 준비상황을 낙관적으로 표현했지만, 사실 평창조직위는 해결해야 할 산더미같은 숙제가 있다”고 했다.

박태환 문제는 한국 스포츠 행정력의 시험대다. 무엇보다 통합 대한체육회가 지난 3월21일 출범한 후 처음 받아 든 시험지다. 박태환은 2014년 9월 금지 약물 검사에서 적발돼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18개월 선수 자격정지 징계를 받고 지난 3월 징계가 종료됐다. 하지만 ‘도핑 관련자는 징계가 끝난 지 3년이 지날 때까지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체육회 규정에 따라 2016 리우올림픽에 나갈 수 없게 됐다. 그러자 박태환은 올림픽서 명예회복을 하겠다며 CAS에 중재 신청을 했다. 해외 수영매체 스윔스왬은 “대한체육회는 규정대로 대표 선발이 불가하다는 입장이지만, 김정행 체육회장은 박태환이 올림픽에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고 있다”고 했다. 체육회 내에서도 엇박자를 내는 어색한 모양새와 향후 박태환 사태의 처리 과정을 조용히 주시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국 스포츠가 여전히 금메달에만 목숨거는 데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행정과 외교력, 국제대회 개최 능력 등 기초체력이 탄탄한 선진국형으로 가는 중인지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 조범자 라이프엔터섹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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