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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이문열, 한강 맨부커상 수상 “그 덕을 우리 모두 보게 될 것”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한 덕을 동료 뿐 아니라 선ㆍ후배 모두 보게 될 거에요. 한국문학을 공부하는 이들 중에 그런 희망을 갖고 접근할 수도 있고요.”

소설가 이문열(68)이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과 관련, “이런 일은 모두가 기뻐해야 할 일”이라며, 한국문학에 단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서 이문열 씨를 만났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문학한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터에, 해외에 가장 많은 작품이 소개된 그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숙제를 들어봤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이 씨는 한강의 수상이 두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우선 지난해 ‘신경숙 표절’ 사태로 드러난 한국문단의 폐쇄성과 경직성, 독자의 외면 등으로 이어진 한국문학의 위기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 외국에서 한국문학의 입지를 넗혀줄 것으로 봤다.

해외 에이전시(美 와일리 에이전시) 소속 작가 1호인 그는 4년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거둔 미국시장의 성공적 진출과 한강의 이번 맨부커상 수상을 높이 평가했다. 



“프랑스에는 제 작품이 10권 정도 번역됐고, 스페인어권도 10권이 넘습니다. 이태리, 독일도 각각 10권정도 번역됐는데 영미권은 어려웠어요. 미국의 하이페리온 출판사에서 나온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영국의 하빌 출판사에서 나온 ‘시인’이 다에요. 그만큼 시장이 우리에겐 어려운 곳인데, 신경숙 작가의 성공이나 맨부커상 수상은 대단한 거에요.”

그러면서 그는 한강 씨와 함께 했던 이태리 여행 얘기를 들려줬다.

“한강 씨하고 재작년인가 이태리 여행을 같이 하면서 문학적 견해를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자신이 ‘채식주의자’를 쓴 것은 더 궁극적인 이야기를 위한 단계인데, 광주이야기라며 “그걸 방금 쓰고 왔습니다” 하더라고요. 그게 ‘소년이 온다’인데, 이번 수상작보다 거기에 더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이 씨가 우려하는 건, 이를 이데올로기와 연결해서 특정한 소재가 한국문학의 특징처럼 돼버릴까 하는 점이다.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이자, 문학은 다양해야 한다는 입장을 한결같이 견지해온 그로서는 그런 일에 늘 감각이 예민해진다. 그는 자신의 이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걱정했다.

그는 한국문학이 외국에 더 잘 알려지려면 우선 우리 안에서 좀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세상을 보는 관점은 다양하고 서로 다른 면으로 표현돼야 하는데 한 멜로디로 불려져야 한다는 건 답답한 일이에요. 우리시대, 우리문학이 그런 틀에 갇혀서 오랫동안 정체한것 아닌가 싶어요.”

그는 그 극단적인 예로,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제창’과 ‘합창’ 논란을 들었다. “애국가를 제창하지만 안 부르는 사람도 있잖아요. 따라 부를 사람은 하고 말 사람은 마는 거지 다 따라 부르라고 하는 건 웃긴거죠. 다른 목소리도 있어야죠.”

그는 “어떤 사안이라는 건 세월이 지나면 논의가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며, “세월이 지날수록 더 한 목소리로 밀려가는 사회는 고약한 사회”라고 말을 이었다.

이 씨는 최근 ‘문학한류’를 언급하는 분위기에 대해, “급작스럽게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흐름으로 편입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80년대 말에 책이 처음 번역돼 나갈 때 한국에도 문학이 있냐고 했어요. 문학은 음악이나 미술, 무용과 달리 번역을 해야 하는 바람에 불리한 쪽에 있을 거다 생각은 합니다. 뭔가 하고 있으면 들어갈 수 없는 게 아니라 흘러가기 때문에 충분히 여지가 있어요.”

그는 서양에서 일본문학의 인기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줬다.

한번은 하버드대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란계 미국인 학생을 만났다.

어떤 경위로 한국문학을 공부하게 됐냐고 물었더니, 실은 일본문학을 하고 싶었는데 경쟁자가 너무 많아서 비어있는 한국문학을 하게 됐다는 것. 그래서 일본문학은 어떻게 알게 됐냐고 다시 물었더니, 중학교 때 미야모토 무사시 책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일본 문학에 흥미를 갖게 됐더란 얘기다.

일본문학의 세계 석권은 물량적 공세와 함께 다양한 작품들이 흘러 들어가면서 흐름이 형성된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현지인의 감성에 맞춘 번역의 중요성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들려줬다.

“한번은 프랑스 라로세 대학에 문학강연을 갔는데 어느 분이 ‘그 해 겨울’을 두 페이지나 외워서 왔어요. 좋아하는 구절이라 외웠대요. 그 부분이 내가 쓴 문장 중 가장 좋은 건 아닌데. 그래서 번역가인 패트릭 모리스가 번역을 잘했나 보다 했죠.”

그의 얘기는 최근 독자로부터 외면당한 ‘한국소설의 위기론’으로 돌아왔다.

“출판상업주의가 그 원인의 하나에요. 베스트셀러 작가에만 매달리니 작가 하나로 출판사 흥망이 결정되는 지경이 됐잖아요. 장마다 꼴뚜기가 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출판사들이 눈을 돌린게 외국작가인데, 그런 작가들 작품 중엔 ‘이런 것 까지 내놓아야 하나’ 싶은 것 까지 만들어냈어요. 90년대 어느 때는 우리 작가들이 책 낼 데가 없다고 했어요. 출판사는 안팔리니 안낸다 하는 거죠.”

이 씨는 다른 원인으로 “문학을 이상한 틀 속에 집어 넣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각종 문학상심사위원을 맡아온 그는 작품이 두 세개 패턴으로 획일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분명 같은 사람이 아닌데 구별이 안될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 특정 이데올로기와 문예적 사조에 따라 쓰다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시원하고 낯선 게 가끔은 나와요. 그러나 최고의 주류에 편입되긴 어렵죠. 원하는 형태에서 벗어나면 아무리 잘 써도 비평작업이 활발히 가야 하는데 제대로 안봐요.”

그는 ‘신경숙 표절사태’로 불거진 ‘문단권력’과 관련, 묘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카르텔’이란 말은 20년 전에 내가 만들어냈어요. 피해도 입었고 나혼자 쓸 수 있는 말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당시 ‘문단카르텔’이란 말이 나오더라고요. 다른 사람들도 그런 피해를 입었구나 싶었죠.”

그는 ‘신경숙 사태’ 이후 문예지 편집진들의 교체 등 쇄신 노력을 반겼다.

그러면서도 걱정 한 자락은 거두지 못했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을 수도 있지만, 반성이나 관찰이 자기 중심적으로 이뤄지면 구조를 강화시킬 수도 있죠.”

이 씨는 대하소설 ‘변경’후속작을 10년 정도 구상해왔다. 80년대가 그 배경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디테일을 얘기할 수 있는 수준까지 소설이 완성돼 있다. 그런데도 쓰지 못하고 있다.

“지금 돌아가는 상태에선 쓰고 싶지 않습니다. 다성 합창을 쓰고 싶은데 단성 제창으로 해야 한다네요. 각오하고 쓸 수는 있겠죠.”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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