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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역 추모] 우리는 소녀의 죽음을 추모를 하고 있는가? ‘혐오’에 빠진 한국 사회
[헤럴드경제] 강남역 10번 출구가 갈등의 장이 됐다.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이유없이 살해된 20대 여성을 위한 추모열기가 이어졌지만 현장에는 ‘여혐’(여자 혐오)와 ‘남혐’(남혐)을 둘러싼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사진=인스타그램 jysyndrome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계기로 남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추모 현장에서 여성과 남성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가 하면, 여성을 비하하거나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포스트잇을 붙이는 남녀, 심지어 돈을 받고 추모환을 없애려한 사람까지 등장했다. 억울하게 죽은 여대생을 위해 자리를 찾은 사람들도 많지만, ‘남혐’ vs. ‘여혐’ 논쟁에 빠져 성대결을 펼치는 이들도 눈에 띄고 있다.

정신분열증 남성이 삐뚤어진 남성중심적인 문화에 빠져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을 노렸다. 경찰 조사결과 가해자는 남성 6명을 지나치고 피해자 여성을 살해했다. 가해자는 “여성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서 그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약자인 여성의 죽음에 가장 옆에서 절규한 사람도 ‘남성’이었다.

▶ ‘남성’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삐뚤어진 ‘남성위주의 성차별의식’이 문제=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통해 여성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나선 것은 단순히 ‘여성 혐오 살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삐뚤어진 남성중심주의 하위문화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를 폭발케한 ‘기폭제’로 작용했다. 만연한 여성 폭력과 살인, 그리고 이에 무감각한 사회에 여성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실제로 2011년 살인ㆍ강도ㆍ방화ㆍ강간 등 4대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은 2013년 기준 90%를 넘어섰다. 연인을 상대로한 데이트 폭력이나 염산 테러 등도 최근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한국 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서도 강력범죄의 가해자는 98%가 남성이고 피해자는 84%가 여성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를 약자에게 전가시키는 구조적인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남성’이 문제가 아니라, ‘여성’을 약자로 보고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휘둘러도 된다는 왜곡된 남성중심적인 성의식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당장 인터넷에서도여성을 ‘김치녀’, ‘된장녀’라 표현하며 폄하하거나 ‘상폐녀’(상장폐지녀ㆍ30대 이상의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고 비하하는 말) 등 희롱하는 용어가 스스럼없이 사용되고 있다.

미국 시민단체 ‘폭력 근절연합’(NCADV)의 루스 글렌 대표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인, 즉 페미사이드(femicide)에 대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이유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풍토가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결국 사회적 약자에 분노를 전가하는 흉악범죄를 막자는 것이 반(反)페미사이드 운동의 골자”라고 더 타임지에 밝히기도 했다.



▶ ‘남혐’ 논쟁, 역차별을 다시 생각하게 하다=

“이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 정신병 때문이다!”

강남 살인사건을 두고 ‘여성혐오 살인사건’이라며 분노하는 여성들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남성들이 외치는 말이다. 하지만 강력범죄의 피해자 90%가 여성인 점을 고려했을 때, 한국 사회 속에 여성을 향한 구조적인 폭력이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여혐’에 분노하고 있는 남성들이 단순히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강남역 10번 출구역에 붙여진 포스트잇 중 “살女주세요, 넌 살아男았잖아”는 문구는 남성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남성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남성들은 “모든 남성들이 여성에게 성추행을 가하는 것은 아니다”며 “여성들도 남성에게 성추행을 가한다. 하지만 남성들은 이에 대해 분노를 터뜨릴 곳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MBC 예능프로그램에서 여군 특집에서 출연자와 제작진은 당시 부대의 조교의 신체부위를 강조하고 예능적으로 표현해 논란이 됐다. 당시 남성들은 “여성이 성희롱을 당하면 분노하면서 남성을 향한 성희롱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식이 없다”고 격분했다. 결혼을 둘러싼 비용문제나 남성위주로 돈을 내야 하는 데이트비용 문화 등 ‘역차별’에 대해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결국 강남 살인사건을 둘러싼 여성들의 집단행동을 ‘남혐 운동’이라고 분노하는 이들 역시 자신들 나름의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 양성평등과 약자를 겨냥한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사회를 마련하는 것이 피해자를 추모하는 진정한 길…우리는 그 길을 향하고 있는가=

‘페미사이드’라는 용어는 1990년~200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도 빈번하게 사용됐다. 비록 2014년 미국내 젠더사이드 중 85%가 여전히 페미사이드이지만, 1990년대 대비 여성에 대한 사회적ㆍ구조적 차별이 완화되면서 페미사이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언론보도의 수가 줄기 시작했다. 한국 역시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을 통해 여성에 대한 사회ㆍ구조적 차별을 직시하고 교정해나가는 과도기를 직면하게 됐다. 우리사회에 내재한 여성을 향한 구조적 폭력과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상승으로 역차별이 부각되면서 남녀간 성대결이 발전한 것이다.

피해자 여성을 추모하고 그 옆에서 오열한 남자친구를 위로하기 위해서는 결국 ‘올바른 양성평등’이 무엇인지, 또 이번 사건과 마찬가지로 약자를 노린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 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제 2, 3의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막기 위해서도 그렇다. 무엇이 진정한 양성평등이며, 어떤 유형의 성차별과 역차별이 존재하는지 논의해나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오늘도 인터넷과 거리에서는 ‘여혐이다’, ‘남혐이다’며 건설적인 토론보다는 ‘니가 틀리고 내가 옳다’ 식의 성대결만 가득하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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