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취재X파일] “시인은 사라지지만 그의 노래는 길거리에 살아남는다”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가.”

다소 식상할 수도 있는 메일함의 이 문장이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당시 들끓고 있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 때문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스러져 간 윤상원 씨와 그가 사랑했던 박기순 씨의 영혼 결혼식에 바쳐졌던 축가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10여년 이상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제창되고 학생 사회에서 널리 불리워진 이 노래를 공식적인 5ㆍ18의 상징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태도였다. 민주화 이후 적어도 정치적 측면에서는 쟁취된 것으로 여겨졌던 표현의 자유가 깡그리 부정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보수세력에게 이 곡이 북한의 선전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에 쓰였다는 이유로 1980년 5월 광주라는 역사적 맥락은 제거된 채 어느새 ‘국론 분열을 일으키는 불온곡’이 돼 있었다. 가사 중 ‘임’은 김일성 주석, ‘새 날’은 공산 혁명의 날로 곡해됐다. 노래라는 예술 장르도 특정 세력이 생각하는 ‘상식’에 맞지 않으면 강제로 폐기돼야 하는 걸까?


엠마누엘 발롱 파리 10대학 교수가 이 의문에 답을 준 것은 지난 19일 숙명여대 중앙도서관에서 열린 특강<사진>에서다. 그는 “우리에게 주어진 규범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모든 예술가에게 주어진 기능”이라고 말했다.

발롱 교수에 따르면 도덕과 규범이 이성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인정할 때 예술은 그 한계선 너머의 것을 느낀다. 항상 더 ‘아름다운’것을 추구하는 예술가는 언제나 그 한계에 도전하고 넘어서는 것을 숙명으로 삼는다.

그는 “예술과 달리 권력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공중의 보편적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개입한다”면서 “예술인 역시 사회의 조화를 깨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들이민다”고 설명했다.

예술에 표현의 한계를 지우려는 것은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예술을 장려한 독일 나치 정부나 문화혁명을 일으킨 마오쩌둥 정권만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프랑스 혁명으로 자유와 평등, 박애 사상이 뿌리 내린 프랑스 공화정 시기 시인 보들레르의 ‘악의 꽃’ 등 6개의 시는 그 표현이 적나라하고 당시의 도덕관념을 무너뜨렸다는 이유로 기소돼 출판이 금지됐다.

심지어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자연만의 비율을 어기고 인공적인 미를 만들어내는 조각가들을 국가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롱 교수는 “당시의 삶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예술에 보편성, 객관성의 굴레를 씌우려는 것은 정치와 권력의 속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권력은 예술을 영원히 속박할 수 없다. 러시아의 펑크밴드 푸시 라이엇은 2012년 반(反) 푸틴 시위를 벌여 투옥됐다가 석방된 후에도 극우 단체에 습격을 받는 등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 검사 유니폼을 입고 푸틴 사진 아래서 죄수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뮤직 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리는 등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예술이 권력을 이겨내고 불멸의 생명력을 얻는 것은 예술가가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그 가치를 평가받기 위해 대중 앞에 서기 때문이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것을 그리스어로 ‘진실의 용기’라는 뜻의 단어, 파르헤지아(parrhêsia)라고 부른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기소했던 피나르 검사는 “이 시의 매력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기소가 실패하면 작가는 예술인으로서 높은 지위를 얻는데 성공할 것이고 성공하면 마치 정부에 의해 고난을 치르는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라며 주저하다 기소했던 것이다. 결국 그의 예언은 실현돼 1949년 보들레르의 시는 출판 금지가 해제됐고 그는 전세계가 인정하는 시인이 됐다.

그렇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어떨까? 필자의 질문에 발롱 교수는 오래 전 샹송 가수 샤를르 트레네의 가사를 대답 대신 내놨다.

“ 오래 오래 오래 시인은 사라지지만 그의 노래는 길거리에 남는다.(Longtemps, longtemps, longtemps Après que les poètes ont disparu Leurs chansons courent encore dans les rues)”

why37@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