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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 NO…동거·연애만 한다 일본은 지금‘미혼 당연시대’
#석사 출신의 비정규직 간호사인 야마구치 쿄코(33ㆍ여·가명)는 80세인 남자친구를 두고 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간호업을 하고 있다는 환경적인 이유도 있지만 남자친구의 노령연금으로 좀 더 다양한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결혼은 당연히 생각하지 않는다. 첫 직장에서 사내 왕따와 성희롱을 당한 뒤 그녀는 연봉 400만 엔을 뿌리치고 월급 17만 엔(약 183만원)짜리 비정규직을 갖게 됐다. 월급 17만 엔으로 후생연금과 고용보험, 건강보험, 소득세까지 다 차감돼 실수령액 14만 1300엔으로는 삶이 너무 빠듯하다.
#유타(39ㆍ남)는 통신업계에서 비정규직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여자친구와 쉐어하우스에서 산다. 한 살림을 차린 것 같지만 살림은 ‘따로 따로’다. 전기세도 나눠서 내고 집세도 정확히 2분의 1로 나눈다. 데이트 비용도 마찬가지다. 섹스도 즐기지만 유타와 여자친구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유를 묻자, 유타는 당연하다는 듯, “꼭 결혼을 해야 해요?”고 반문한다.
일본에서 미혼이 ‘당연한 것’이 되고 있다. 오죽하면 ‘미혼당연시대’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불황과 함께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결혼이 선택사항이 된 사회가 와버렸다.
2012년 취업구조 기본조사에 따르면 20~24세의 일본 남성 중 95%가 고용형태와 관계없이 미혼이다. 35~39세 남성 중 정규직에 고용된 남성의 미혼율은 25.3%로 뚝 떨어지지만 파견직이나 계약사원의 경우, 미혼율은 67.2%로 여전히 높다. 파트타임 근무자의 미혼율은 85.8%에 달한다. 유타 씨와 같은 비정규직 남성들은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의 비자발적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2014년 18.1%다.
하지만 25~34세의 경우 같은 연도 기준 28.5%에 달했다. 한국의 경우 비자발적 비정규직 비율은 22.4%이다.
비정규직으로 인한 생계불안은 늦은 독립과 노후 불안으로까지 이어진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ㆍ닛케이) 기초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5~34세 일본 청년 가운데 부모로부터 독립한 이들의 비율은 48%에 그쳤다. 1994~1998년 평균이 73%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20년 사이 일본 청년들의 자립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이다. ‘니트족’, ‘캥거루족’이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대중적인 단어가 된지 오래다.
고베 대학교의 히라야마 요스케 교수는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으로 독립이 줄고 자연스럽게 결혼ㆍ출산도 감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3월 내각부 설문조사에서 25~34세 일본 미혼남녀의 20%가 경제불안을 이유로 결혼을 기피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편, 취업구조 기본조사에서 여성의 미혼율은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39.3~46.9% 사이를 오갔다. 여성은 결혼하는 데 직장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유 역시 ‘가난’ 때문이다. NHK방송에 따르면 10ㆍ20대 일을 하는 여성은 전국 503만 명으로, 이들의 절반 가량이 모두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의 연봉은 300만 엔 이하다. 사회보장ㆍ인구문제연구소가 20~64세 독신여성들의 ‘상대적 빈곤율’을 조사한 결과, 32%가 상대적 빈곤층에 해당했다. 직장을 갖는다고 해도 대부분 세쿠하라(성희롱), 파와하라(귄위를 이용한 횡포) 등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이 가난과 열악한 직장환경을 이유로 여유가 있는 남성들을 연애상대로 꼽다보니 나이 격차가 큰 커플도 급증하고 있다. 쿄코 씨처럼 아예 은퇴한 노인을 만나는 경우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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