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죽이겠다” 칼 소지한 채 배회했다면 살인예비죄?
준비단계만으로 처벌땐 논란
구체성·실제적 위험성 있어야 유죄
검찰도 논란여지 많아 제한적 기소



#1. 사회복무요원인 A(24) 씨는 지난해 10월 새벽 3시 원주 자신의 집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김모 씨와 통화하다가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김 씨가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잠자리를 요구했던 사실을 뒤늦게 알고 따지려 전화했는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죽여 버리겠다”라고 말하고 싱크대에 있는 과도를 들고, 김 씨의 아파트를 찾아가 단지 주변을 배회했다. A 씨는 김 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2. 일용직 노동자 B(50) 씨는 전처가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남편으로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고, 헤어지자는 요구에 결국 이혼해 홀로 외롭게 살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어느 날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신 B 씨는 식당 선반 위에서 칼을 발견하자 1만원을 올려놓고, 이를 자신의 옷에 감추고 나왔다. 칼을 소지한 채 거리를 배회하던 B 씨는 30분 후 식당종업원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검거됐다. 왜 칼을 들고 나왔냐는 경찰의 질문에 B 씨는 “마누라를 죽이기 위해 가지고 왔다”고 답했다.

A 씨와 B 씨는 모두 화가 난 상태에서 누군가를 죽일 목적으로 칼을 소지하고, 거리를 배회하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이 기소한 죄명은 ‘살인예비’. 살인을 위한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 중 A 씨만 유죄(벌금 50만원)를 선고받았다. 두 사람을 가른 기준은 무엇일까.

범죄 행동이 시작되기 전 ‘예비’ 단계에서 체포하는 예비범죄는 아직 행위가 일어나기 전 예비 행위만으로 처벌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많은 범죄다. 행동을 착수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처벌이 가능하냐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논란이 많은 만큼 살인예비, 방화예비, 강도예비 등 법에서 특별히 규정한 테두리에서만 처벌한다. 얼마나 구체적으로 범죄행위를 준비했느냐, 실질적인 위험성이 있느냐에 따라 유무죄 여부가 달라진다.

춘천지법이 A 씨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건 칼을 들고 친구 집에까지 찾아간 구체적인 행위가 실제 살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의정부지법이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B 씨의 검거 장소가 칼을 들고 나왔던 식당보다 오히려 전처의 집과 먼 곳이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본인이 전처를 죽이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화가 나면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종종 했었고, 검거 당시에도 만취해 횡설수설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예비범죄가 성립하려면 행위에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 단지 칼을 소지하고 있거나,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살인예비’ 죄가 성립하진 않는다. 칼의 용도가 꼭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예비죄는 실행에 옮기기 전 단계에서 처벌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란이 많은 만큼 강력범죄에 한해 누가 봐도 위험성이 높은 경우 제한적으로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박일한 기자/jumpcut@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