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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준비만 해도 죄? ①] 살인하려다 말았는데, 징역 1년6개월 실형
-살인예비, 방화예비, 강도예비 등 예비범죄 연간 100여건 기소

-준비행위 구체적으로 있어야 처벌…“정황만으로는 기소 안돼”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대법원은 지난달 15일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암살 계획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택배 기사 A모(50) 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남성에게 적용된 죄목은 ‘살인예비’. 살인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실형이 선고된 것이다.

재판부는 “경제적 대가를 받고 살인을 할 대상, 날짜, 장소를 모의하고, 실행행위를 분담할 사람을 섭외했으며, 현장답사까지 했다면 살인예비 행위가 분명하다”며 ‘예비’ 단계에서 처벌하는 예비 범에게 이례적인 징역형을 내렸다.

A 씨는 지난 2009년 10~11월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은 김모(64) 씨와 만나 황 전 비서를 죽여주면 5억원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아들여 구체적인 암살을 준비했다. 당시 황 전 비서의 방송국 출연 일정을 확인한 후 방송국 앞에서 동선을 확인하기도 했다. 다만 A 씨는 암살 계획 하루 전날, 주기로 한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범죄가 실제 일어나지 않고 준비만 해도 처벌되는 예비범에 실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최근 자주 눈에 띈다.
범죄가 일어나기 전 ‘예비’ 행위만으로 처벌하는 예비범죄에 대한 실형 선고가 최근 자주 눈에 띄어 눈길을 끈다. 살인예비, 방화예비, 강도예비 등 주로 강력범죄를 준비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되는 경우다. 행위가 일어나기 전 준비단계 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그 자체로 논란이 클 수 밖에 없다. 실제 일어나지 않은 행위를 준비만 했다고 사법당국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은 자칫 처벌 대상이 대폭 확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예비범죄의 기소는 상당히 신중한 편이다. 누가 봐도 실제 범죄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 한해 엄격히 적용한다. 내란, 살인, 방화, 폭발물사용, 통화위조, 교통방해 등 주로 강력범죄에 한해 제한적인 조건에서만 적용한다. 그래서 기소 건수는 많지 않은 편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강력사건의 예비 범죄로 기소된 사람은 100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방화예비로 89명, 살인예비로 23명, 강도예비로 7명이 각각 기소됐다. 2014년도 비슷하다. 방화예비로 91명, 살인예비 22명, 강도예비 5명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예비범죄는 법령이 규정한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적용하기 때문에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며 “잘못 해석하면 범위가 너무 커지기 때문에 위험성이 큰 경우에 한해 엄격히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형법 255조 살인예비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살인죄를 범할 목적 외에도 살인의 준비에 관한 고의가 있어야 하며, 실행에 이르지 않았어도 이를 위한 규체적인 준비행위가 있어야 한다.

예를들어 최근 울산지법은 헤어진 애인의 새 남자친구를 죽이기 위해 살인 예비를 했다는 이유로 운전사 B(51) 씨에게 징역 8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B 씨는 칼을 들고 전 애인의 새 남자친구 집 근처를 배회하며 인근 가게에서 피해자의 이름과 집 위치 등 인적사항을 확인했다.

최근 수원지법에서 강도예비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3년 형을 선고받은 회사원 C(44) 씨는 범죄 대상인 여성을 물색한 후, 납치 계획을 세우고, 칼, 안대, 청테이프, 장갑 등을 구입해 피해자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적발됐다. 실행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바로 강도가 이뤄졌던 상황이라고 법원이 판단했다.

법원 관계자는 “예비죄는 징역형 등 실형보다 주로 벌금형 처분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상당히 신중하게 판결하기 때문에 특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법이 오남용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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