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바마 히로시마 방문
“美·日 서로 목적다르다 ”분석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는 27일 ‘원폭의 땅’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가사키(長崎)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이후 71년 만에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이다. 하지만 71년만의 원폭지 방문에 깔려 있는 배경은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동상이몽(同床異夢)에서 출발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사과는 없다”고 하지만 전범(戰犯)이라는 꼬리표를 희석시키고 오히려 ‘일본=피해자’라는 인식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쟁 피해국’ 이미지를 강조해 일본의 과거 침략ㆍ전쟁국의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데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안보법 명분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이 11일 사설에서 “미국 대통령의 피폭지 방문은 일본의 전쟁 책임을 둘러싼 논란을 재연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과 중국에서는 이미 ‘가해자인 일본을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라는 반발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장고 끝에 히로시마 행을 결정한 것은 집권 내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해 온 자신의 이니셔티브를 완성하기 위한 욕심(?)에서 비롯됐다. 미 백악관이 10일 “‘핵무기 없는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추구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속적인 약속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발표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이란 핵협상과 쿠바와의 국교정상화, 기후변화 합의 등으로 이어진 외교사적 업적에 이번 히로시마 방문이 일종의 화룡점정이 되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이번 방문이 ‘사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는 27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뤄질 공개 연설에서 ‘메시지 관리’를 통해 이같은 점을 명확힐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같은 ‘핵 없는 세상’의 표면적인 이유와는 달리 아베 일본 총리의 속내는 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단 엔고로 인해 표류하는 아베노믹스의 위기를 타결하기 위한 좋은 정치적 이벤트를 마련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닛케이 신문은 이와 관련 “7월 참의원 선거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집권 자민당 간부의 말을 소개하면서 두 정상의 히로시마 동반 방문이 아베 정권의 ‘매파 색채’에 대한 야당의 비판에 힘을 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무엇보다 미국동맹 강화와 동시에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를 다시 한 번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아베 총리가 작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70주년을 맞아 유엔에 ‘핵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의결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것을 놓고 전문가들은 일본이 NPT(핵확산금지조약) 등 핵 관련 국제 협정에서 리더 역할을 맡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분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히로시마 방문이 이같은 아베 총리의 의중에 더 큰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니치 신문은 ‘일미(日美) 심화의 새 시대’라는 제목의 해설기사에서 “일미동맹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성숙하고 강고하게 심화해 새 시대로 들어갔다는 인상을 주려는 목적”이라고 평가했으며, 닛케이도 “양국에 박힌 역사의 가시를 빼는 한편 보다 견고한 연대로 묶고 일미동맹을 심화시켜 세계의 안정과 번영에 공헌토록 하는 기초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문제는 과거 ‘태평양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과 안보법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본이 도쿄대공습 사건 당시 피해자 규모가 15만명으로 나가사키 피해자(7~8만명) 보다 많은 데도 유독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해를 강조한 것도 ‘전쟁 피해국’의 이미지 강화를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김성훈ㆍ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