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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절 변화와 사물의 상징성이 공존하는 화폭의 판타지

[헤럴드경제] 현대 서양화에서는 만화경처럼 화가의 심상을 이리저리 굴리는 드로잉을 거쳐, 상상력과 자유로움을 얹어 캔버스에 채색해 박제한다. 그러므로 화가의 연작은 눈앞에서 수증기처럼 사라지는 추억과 환상을 나비처럼 채집하는 과정 속에서 화가의 자아라는 핀을 꽂아 컬렉션하는 과정이다. 지난 ‘현대미술초대전’, ‘LA아트쇼’, ‘뉴욕 개인전’ 및 홍콩, 싱가폴, 중국, 일본에서 진행된 아트페어에 참여하는 등 명성 있는 전시회에서 현대 추상미술의 자존심을 보여준 화가 성순희 작가는 공간의 재구성과 오브제의 순환성, 대상화와 타자화를 통해 염원하던 환상을 현실로 잇는 화풍으로 사랑받아 왔다. 


그동안 연작으로 인간의 동심과 성숙한 관조로 인한 아름다운 결과물을 희망차게 그려낸 성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꽃을 꿈이 환생한 존재, 새를 생명에 깃든 영혼이자 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자로 등장시킨다. 특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일련의 작품에서는 색채만으로 보여줄 수 없는 상징과 그 함의를 한층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네 계절을 테마로 하여 특기인 채색기술을 여지없이 발휘하였음은 물론, 서양화의 구조 안에 있으면서도 캘리그래프 식 상형문자같은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봄(강화)>에서 이렇게 선과 점으로 구형한 오브제는 배경까지 함께 강조하고 있다. 갈증이 느껴질 만큼 건조하고 거친 갈필과 환상적으로 뒤엉켜, 중심을 향하는 물결처럼 안정을 찾는 적묵법을 닮은 채색은 아크릴화의 규칙을 따르면서 때로는 윤회의 동양적 관점을 단순화, 그리고 시각화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은 계절의 변화를 늘 꽃이 피고 지는 것으로 알려 주는 경향이 있는데, 성 작가는 계절을 상징하는 자연물에도 희망이라는 상징을 반영한다. 폴 드 세느비유가 작곡한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유명한 피아노곡과 동명인 주제를 노란 꽃잎의 개화에 담은 <봄(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을 경험하고 나면 콜라주처럼 붙인 메인 오브제 주변이 마치 거대한 꽃의 일부처럼 보이는 <8월의 열정>, 그리고 캔버스를 앵글로 삼아 사물을 확대해 크고 강렬한 보색으로 된 선과 점, 그라데이션으로 시각의 아포리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여름(사랑)>이 펼쳐진다. 꽃과 글라스 화병 중 무엇이 사물이고 배경인지 경계가 애매해 주체와 객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여름(꽃과 화병)>에서 희망은 단순히 화면에 얹혀 있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안고 보는 이들의 품 안으로 날아 들어온다. 

겨울이 끝나고 새 봄맞이는 둥근 회오리처럼 직설적인 순환으로 나타낸다. 따라서 그래피티처럼 뿌리고 은은한 경계를 두는 기법, 외곽선을 따내고 경계를 분명히 하는 오브제로 나무와 새를 등장시킨 <그리고 봄..>의 환상이 돌아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지만 훨씬 경쾌한 곡선을 담은 <여름 2012>에서는 현실과 꿈같은 환상을 무리 없이 봉합하고 있다. 연작에서 중심, 세부로의 확장 실력을 보여준 성 작가의 스토리텔링은 정평이 나 있다. 이는 <그 여름 사랑일까(2009)>의 메인 오브제가 보낸 질문을, 더 많은 오브제를 만나 흰 새들이 소통하는 새로운 피사체로 확장시킨 <그 여름 사랑으로(2010)>를 통해 답변하면서 더욱 세련된 형태로 진화했다. 이처럼 성 작가는 견고한 상상력을 품은 작품들로 회화를 이미지조형에서 심상의 색채조형 영역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명우 기자/ andyjung79@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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