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정확히 100일이다. 김종인의 정치는 아슬아슬한 승부수다. 때론 먼저 논란을 만들고, 그러면서도 태연하게 고비마다 국면을 전환하는 ‘한 수’를 내놓는다.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무릎을 꿇고 춤도 추면서, 또 필요하다면 ‘협박’에 가까운 사퇴 의사까지 내놓는다. 극단을 오가는 정치를 펼치지만, 결국 김 대표는 원하는 바를 취한다. ‘킹메이커’, ‘정치 9단’…, 그에게 따라붙는 갖가지 수식어는 지난 100일 동안 다시금 증명됐다.
22일로 김 대표는 더민주에 합류한 지 정확히 100일째를 맞이한다. 지난 1월 14일, 당시 문재인 대표는 김종인 선대위원장 임명을 전격 발표했다. 야권 분열과 줄 잇는 탈당으로 고사 위기에 직면한 더민주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주요 공신인 김 대표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반발도 거셌다. 당장 전두환 정권에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한 이력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김 대표는 논란을 피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취임 첫 행보로 광주를 찾아 “광주 분들께 죄송하다”며 공개 사과했다. 5ㆍ18 묘역에선 무릎을 꿇고 참배했다. 그 뒤로도 재차 광주를 방문, “호남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북한 핵실험 등 총선을 앞두고 대북 변수가 터지자 ‘북한 궤멸론(2월 9일)’을 꺼낸 것도 김 대표다. 더민주의 금기를 깨며 보수층으로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노림수였다. 정체성 논란이 일었지만 김 대표는 굽히지 않았다. “더민주가 달라졌다”는 평가에 당내 반발도 한풀 기세가 꺾였다.
필리버스터 정국을 마무리한 것도 김 대표다. 3월 1일 필리버스터 종료를 공식적으로 요구했고, 이에 당내 강경파 의원이 정면 반대했다. 김 대표가 꺼낸 카드는 ‘야권통합’이다. 그는 “필리버스터를 계기로 야권이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야권 통합에 동참하자는 제의를 드린다”고 밝혔다. 세간의 관심은 야권통합으로 옮겨졌다. 필리버스터 종료에 따른 부담을 덜게 된 카드였다.
김 대표의 승부수는 비례대표 논란에서 절정에 다다랐다. 3월 20일 비례대표 2번에 이름을 올리면서 ‘셀프 공천’이란 반발에 직면마자 김 대표는 곧바로 당부를 거부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그따위 대접하는 정당에 일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며 사퇴를 시사하는 등 강도높은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여지가 없는 맞대응에 더민주는 ‘읍소모드’로 전환했다. 문 전 대표가 급히 상경해 김 대표를 만났고, 비대위원은 사의를 표명했다. 3일 뒤, 김 대표는 당 잔류를 공식 선언했고, 비례대표 2번을 얻어냈다.
총선 승리 이후에도 김 대표의 승부수는 계속된다. 당권을 두고 합의추대론이 불거지고 당내 반발이 가시화되자, 김 대표는 지난 20일 ‘구조조정’ 카드를 꺼냈다. 여권을 제치고 구조조정 화두를 선점한 더민주다. 뿐만 아니라 합의추대 논란도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김 대표의 승부수 정치는 언제까지, 어디까지 이어질까. 그는 이제 100일 정치를 끝냈다. 그리고 내년 대선까진 608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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