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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진이 바꿔놓은 日]지진 때마다 심해지는 재일한국인 차별…갈 곳 잃은 재일한국인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재일교포 장모 (34ㆍ여)씨는 최근 갈 곳을 잃은 기분이다. 구마모토 지진으로 일본인들의 분노가 재일 한국인이나 조선인들을 향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6.5도의 강진이 구마모토를 강타하자 SNS 상에서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글이 떠돌았다. 자연스럽게 조선인이 대량학살 당한 간토 대지진이 떠올랐다.

재난의 순간이 오면 일본 사회의 구성원이었던 재일 한국인들은 ‘외국인’으로 전락한다. 오사카부는 2011년 3월 20년 동안 이어온 조선인학교 보조금제도를 끊어버렸다. 공교롭게도 동일본대지진 발생 시기와 겹친다. 지진 발발 직후 일본 교육청은 동북지방에 소재하는 학교의 안전성을 점검하기 시작했지만 재일조선인이 다니는 조선학교는 점검에는 무성의했다. 대부분의 조선인 학교는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보수공사를 하지 못해 건물은 낙후됐다. 모두 재정지원이 열악한 탓이다.

민주당의 마에하라 외상이 당시 재일동포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도 문제가 됐다. 재일한국인으로부터 연간 5만 엔을 4년 간 받아온 마에하라는 ‘외국인으로부터 비자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임했다. 

“조선인이 구마모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한 트위터 글 [자료=트위터 캡처]

최근 “구마모토 우물에 재일 조선인이 독극물을 풀었다”는 유언비어에 일본 민진당의 아리타 요시후 참의원 의원은 “구마모토 지진에 편승해 재일조선인 차별 루머가 흘러나왔다. 결산위원회에서 40분 간 질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구마모토 이재민의 안전부터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인터넷 상에서는 지금도 “구마모토 이재민들은 범죄발생률이 제일 높은 재일조선인들에 유의하라”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물론 일본인 대다수가 재일 한국인을 향해 차별을 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함께 재난의 피해를 극복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장 씨는 무엇보다 암묵적인 ‘무관심’이 그를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장 씨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다. 1995년 한신ㆍ이와지 대지진을 경험한 그는 “당시 기억나는 것은 공포뿐이다”며 “지진도 지진이지만, 지진의 피해도 재일한국인과 일본인을 구분하는 사회 분위기가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일반학교를 다닌 그는 “눈에 보이는 차별은 없었지만, 사태가 조금 진정된 후 학교에 다시 갔을 때 친구들은 ‘넌 한국으로 도망쳐서 몰랐겠다’며 거리를 뒀다”며 “같은 지진을 경험하고 같은 공포를 느꼈는데도 나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신 지진 당시에도 재일 한국인과 재일 조선인을 향한 일본의 눈초리는 따가웠다. 당시 일본 신진당 소속의 나카무라 에이치 참의원은 “재일 조선인들이 불을 붙였다”며 같은 피해자인 재일 조선인들에 가해자 이미지를 씌웠다.

구마모토 지진 발생 직후 구마모토 현청과 일본 중앙 정부는 노약자와 임산부, 그리고 장애인 등 ‘재해 약자’ 보호에 집중했다. 구마모토 현 정부는 보건소 10개소를 고령자ㆍ장애인 전용시설로 지정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했다. 구마모토 숙박시설들은 현 정부와의 협정 하에 재해 약자들에게 숙박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했다.

하지만 구마모토 내 재일 한국인과 재일 조선인의 피해 상황은 어느 정도인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수의 재일조선학교가 외진 부지에 고립된 채 운영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들에 대한 재난 피해 통계도 반영될 필요가 있다.

장 씨는 지진이 닥칠 때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 양국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상시는 괜찮지만 지진이 닥칠 때마다 어떡하나 싶을 때가 있다”며 “한국 국적이 있고 한국어를 잘해도 일본에서 자란 나는 한국인들에게 외국인일 뿐이다. 일본 지진과 관련된 기사마다 ‘고소하다’는 댓글을 볼때마다 한국에서도 나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라는 자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신 대지진 당시 63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피해자 중에는 재일 한국인과 조선인도 있었다. 구마모토 지진때도 재일 한국인과 조선인들은 그 곳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일본 지진의 현장 속에 그들은 없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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