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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의 악순환 보복범죄] “날 신고해?” 모든 걸 아는 그 놈…다음이 더 두려운 피해자
보복범죄 접수건수 5년새 3배로
피해자 연락처 등 신상유출 많아
주소 위장 등 신분세탁방안 필요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경찰관에게 황산을 뿌린 민원인. 스토킹으로 자신을 신고한 여성을 집까지 찾아가 잔혹하게 살해한 이웃남성. 모두 ‘받은 만큼 갚아준다’는 비뚤어진 심리가 부른 범죄들이다.

게다가 요즘 도로 위에서는 상대가 끼어들었다고 혹은 양보를 안해줬다는 이유로 위협을 가하는 보복운전까지 판치고 있다. 이처럼 상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보복범죄로 요즘 대한민국은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보복문화가 판치고 있어 몸살을 앓고 있다. 피해자 보호는 요원하고, 신변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들 역시 피해자들이 잘 몰라 보복 피해를 입을까 노심초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협박부터 살인까지’보복범죄 연간 300건 육박=현행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은 피해자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에 고소, 고발한 신고자나 법정에서 증언한 증인에게 보복 목적으로 살인ㆍ폭행ㆍ협박 등을 저지르면 가중처벌하고 있다. 예를들어 일반 살인죄는 최소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지만 보복살인을 저지르면 특가법에 따라 최소 10년 이상이 선고된다.

최근 5년간 전국 1심 법원에 접수된 특가법상 보복범죄 사건 숫자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9년 99건을 기록했던 특가법상 보복범죄는 2011년 100건을 넘겼고, 2014년 한해만 264건이 1심 법원에 접수됐다. 5년 사이 3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보복 성격이 있더라도 범죄의 유형에 따라 특가법이 아닌 관련 특별법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실제 보복범죄 수는 이보다 더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피해자 신상 버젓이 공개… 보복범죄 불러=이같은 보복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피해자 보호에 소홀한 수사기관이 질타를 받고 있다.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신상을 유출해 오히려 보복범죄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2013년 경남의 한 경찰은 특수강간죄를 저지른 남성을 신문하면서 피해여성의 직업을 발설해 성폭력처벌법상 비밀준수 위반으로 올해 2월 벌금 30만원이 최종 확정됐다.

법원은 “피해여성이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어 가해자가 조금만 노력을 기울여도 여성의 인적사항을 알 수 있었다”며 해당 경찰의 부주의를 지적했다.

재판 과정에도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김영미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기록을 열람ㆍ복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연락처를 수집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집요하게 전화해 합의를 종용한 경우도 있다”며 “피고인 방어권 차원에서 피해자 진술조서를 아예 못보게 할 수는 없지만 수사기관과 법원이 유출 방지를 위해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 신변보호 제도? 있어도 무용지물=보복의 두려움을 호소하는 피해자를 위해 신변보호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이마저도 홍보가 부족해 무용지물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법무부는 보복범죄 예방을 위해 2012년 민간 경호업체와 업무협약을 맺고, 피해자에게 위치추적장치와 이사비용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3년 국정감사에서 이 제도를 모르는 여성 장애인이 보복범죄에 노출돼 살해당했다고 지적했다.

안민숙 한국피해자지원협회(KOVA) 서울 남부지부장도 “상당수의 피해자들은 신변보호 신청을 어디에 해야 하는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아직도 모른다”며 “수사기관은 피해자가 먼저 신변보호를 요구하기 전까지 적극적으로 개입을 안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안 지부장과 김영미 변호사 모두 “신변보호를 요청해도 가해자가 전화로 계속을 협박을 한다든가 문자를 지속적으로 보내든가 하는 구체적 정황이 있어야만 신변보호를 받을 수 있다”며 그 한계를 지적했다.

보복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의견도 그간 꾸준히 나왔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전국 1심 법원의 특가법상 보복범죄 사건 처리결과를 보면 전체 675건 중 절반이 넘는 380건이 집행유예(350건)나 벌금형(30건)에 그쳤다.

▶피해자 위한 신분세탁 제도 필요=지난해부터 시행된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따라 수사기관은 미란다 원칙처럼 피해자에게 각종 제도적 지원과 권리를 반드시 사전에 고지해야 한다. 하지만 형식적 소개에 그치거나 무성의하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안 지부장은 “피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가해자가 출소 후 다시 찾아오는 것”이라며 “피해자가 계속 이사를 다녀야하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주소변경을 임시로 허가해주고 위장신분제를 도입하는 등 법무부 차원에서 피해자의 신분세탁 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 신상유출을 막는 것이 우선 시급하다며 “기록의 열람ㆍ복사를 당사자(피고인)에게 맡기지 말고 법원이나 검찰이 직접 해서 주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

김현일 기자/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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