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람‘ 이방인의 노래’마르케스 단편소설에 연극 요소 가미 단순하고 잔잔한 판소리로 또다른 실험 유태평양‘ 미산제 흥부가’ 완창 해학·풍자·익살 부각 ‘1인 뮤지컬’ 도전 흥부·놀부 등 다양한 캐릭터 연기 기대

전통에 뿌리를 뒀다. 그런데 새롭다.

한국의 젊은 소리꾼 이자람(37), 유태평양(24)이 전통 판소리의 현대적인 무대 실험에 잇달아 나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자람은 판소리 다섯 바탕(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이 아닌, 남미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무대를 꾸민다. 유태평양은 ‘흥부가’ 판소리 완창 무대에 연극적 요소를 접목할 예정이다.

한국의 젊은 소리꾼 이자람(왼쪽)과 유태평양이 각각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이방인의 노래’, 그리고 ‘흥부가’ 판소리 완창 무대에 연극적 요소를 접목한 ‘미산제 흥부가’ 등 전통 판소리의 현대적인 무대 실험에 나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국립극장]

▶이자람 ‘이방인의 노래’(21일~5월 1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이자람은 ‘이방인의 노래’를 오는 21일부터 5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올린다.

‘이방인의 노래’는 마르케스의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 ‘본 보야지, 미스터 프레지던트!(Bon Voyage, Mr.President!)’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병원 엠뷸런스 기사 등 허드렛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라사라, 오메로 부부가 병을 고치기 위해 제네바로 온 고국의 전직 대통령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자람을 필두로 젊은 소리꾼들과 고수들이 함께 하는 ‘판소리만들기-자’가 지난해 내놓은 신작으로, 올해 재공연은 본격적인 내셔널 투어를 알리는 킥오프 공연이다.

그동안 이자람은 판소리에 연극적 요소를 접목하는 실험을 계속해왔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원작 ‘사천의 선인’을 ‘사천가’로,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을 ‘억척가’로 창작해 자신만의 독특한 ‘브레히트 판소리’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사천가’와 ‘억척가’는 국내에서 전석 매진 기록은 물론, 세계 각국의 연극제에 초청돼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방인의 노래’는 서사가 긴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다. 공연 시간은 인터미션 없이 85분. 3시간 넘게 이어지는 판소리 완창 무대에 비하면 매우 짧다. 이자람은 “판소리는 왜 꼭 2시간을 넘겨야만 하는가” 스스로 질문했고, 이를 위해 찾은 답이 바로 ‘판소리 단편’이다. 소설의 무대화를 실험하고 있는 ‘양손프로젝트’의 박지혜 연출과 손잡았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잔잔하다. 이자람은 “자극과 화려함이 난무하는 시대에 마음을 울리는 잔잔한 이야기를 통해 짙은 여운을 판소리에 담았다”고 작품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의 젊은 소리꾼 이자람(왼쪽)과 유태평양이 각각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이방인의 노래’, 그리고 ‘흥부가’ 판소리 완창 무대에 연극적 요소를 접목한 ‘미산제 흥부가’ 등 전통 판소리의 현대적인 무대 실험에 나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국립극장]

▶유태평양 ‘미산제 흥부가’ 완창(23일, 국립극장 KB하늘극장)=국립극장의 4월 완창판소리 무대는 유태평양이 채운다.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는 지난 1984년부터 32년 동안 고 박동진, 강도근, 오정숙 등 내로라하는 명창들이 서 온 무대다. 올해 1월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유태평양은 완창판소리를 통해 단원으로서 처음 관객 앞에 선다. 유태평양은 오는 23일 KB하늘극장에서 ‘미산제 흥부가’를 공연한다. 해학과 풍자, 익살의 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해 연극적인 무대로 재해석할 예정이다. 이를테면 ‘1인 뮤지컬’ 같은 형식이다.

유태평양은 ‘국악 신동’으로 불렸다. 국악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우리 소리를 배웠다. 말을 트기도 전에 사물놀이, 아쟁, 가야금을 익혔고, 1998년 여섯 살이 되던 해 3시간 30분짜리 판소리 ‘흥부가’를 최연소로 완창한 데 이어 초등학교 5학년에는 ‘수궁가’를 완창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조통달, 성창순 명창을 사사하며 탄탄한 내공을 쌓아온 유태평양은 여러 예술가와 협업하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유태평양이 부를 소리는 ‘미산제 흥부가’는 고(故) 박초월 명창의 호 ‘미산(眉山)’을 붙인 판소리 유파 중 하나다. 박 명창의 조카인 조통달 명창에 이어 그의 제자인 유태평양이 이 소리를 잇고 있다. 동편제를 기반으로 서편제의 특징도 지니고 있는 미산제는 계면조(界面調ㆍ슬픔을 나타내는 곡조) 위주의 창법, 부드러운 애원성(哀怨聲ㆍ슬프게 원망하는 소리)이 두드러진다.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재담이 많이 등장한다. ‘아니리(판소리 사설에서 음률이나 장단에 의하지 않고 일상적 어조의 말로 하는 부분)’ 부분에서 흥부, 놀부 등 각 캐릭터들을 빠르게 바꿔가며 연기할 예정이다.

유태평양은 “흥부가는 다른 판소리에 비해 사자성어나 어려운 한문 투의 사설(가사)이 적기 때문에 연극적인 요소를 부각시키면 관객들이 더욱 이해하기 쉽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아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