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단독] 대기발령자 지문인식기로 감시하는 서울시
-인사 청탁 거부에 좌천 후 “명예퇴직 압박”…그자리엔 낙하산 임명

-거부하자 대기발령 내고 다른 대기발령자와 달리 출ㆍ퇴근 명령

-골방에 가둬 놓고 급여삭감에 수당ㆍ교통비도 안주고 과제 부여

-박시장 조직문화 혁신방안 발표 불구 ‘창살없는 감옥’서 울분




[헤럴드경제=이진용 기자] 오전 8시 50분 남산자락을 걸어 올라와 3층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지문인식기에 엄지 손가락을 대자 “안녕하세요”란 음성과 함께 문이 열린다. 이곳은 최근 공무원시험 응시생이 침입할 만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무실이 아니다. 출근해도 아무 할일 없는 A씨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감금생활’을 하는 사실상 감옥이다. A씨는 지난 1981년 서울시에서 5급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대과 없이 공직생활을 해 2급 이사관까지 올랐다. 순탄했던 공직생활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고 1년이 지난뒤 시작된다. 2012년 한해동안 서울시 인재개발원장으로 재직했던 A씨는 2013년 1월 31일 행정국 대기 발령을 받는다. 이후 2월 1일에는 3급 부이사관에서 2급 이사관으로 승진까지 했다. 승진 직후 국방대학원 교육을 1년 다녀오게 된다. 이때만 해도 다시 일을 할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교육을 받고 와 보니 승진도 교육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교육이 끝나고 서울시 산하기관 보좌역으로 파견 발령을 받으면서 공직 전체 아니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A씨는 “말이 좋아 파견이지 귀양이나 다름 없었다. 특별히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책임도 권한도 없는 그냥 서울시가 승진용으로 만든 자리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A씨는 자신을 이렇게 사지로 내몬 이유로 인사채용 명령을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A씨가 인재개발원장으로 근무할 당시 정책보좌관으로부터 한명을 채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A씨는 “다각적으로 검토했으나 채용할수 없다”고 보고 했다. 그러자 전화기에서 싸늘한 톤으로 “두고 보자”는 말이 나왔다고 전했다.

또다른 2급 이사관인 B씨의 생활도 거의 똑같다. B씨는 남산이 아닌 우면산 인재개발원 옆에 있는 서울시 데이터센터로 출근한다. 출근할때 지문인식기를 통과해야 한다. B씨도 거기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A씨와 똑같이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한다. 사무실은 직원들이 쓰던 휴게실을 급조해서 만들었다. 같이 점심을 먹을 동료도 없다. 산속에 사무실이 있어 식사를 하기도 애매하다. B씨는 “매일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먹는 것도 못할 짓”이라며 “내가 평생을 바쳐 일한 서울시가 나를 창살없는 감옥에 가둬두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실제 데이터센터를 가봤더니 기자도 출입하기 쉽지 않았다. 신분증을 맡기고 휴대전화에는 사진 촬영을 하지 못하게 봉인한후 면회자가 나와서 함께 사무실까지 가야 했다.

B씨도 박원순 시장 1년차에는 잘 나갔다. 서울시 도시기반본부장을 하고 A씨와 똑같이 교육을 다녀 온다. 이후 SH공사 집단에너지사업단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사실 이자리는 2급 이사관이 갈자리가 아니다. 통상 4급 서기관이 일하면 맞는 자리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B씨는 명령을 따랐다.

단장으로 일하고 있는 2014년 9월 서울시 정책보좌관의 전화 한통을 받는다. 환경운동연합 출신인 P씨를 전문위원으로 채용하라는 명령이었다. 명령을 거부할수 없어 채용했다. 그때만 해도 B씨는 명령을 이행한 것이 자신의 무덤이 될지 몰랐다. 전문위원이었던 P씨가 이듬해 7월 B씨를 밀어내고 내부승진한 것처럼 단장을 꿰차게 된다. 이 P씨는 환경운동연합 정책종합실장 재직시절 희망제작소 객원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박원순 시장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다. 


이 두사람은 지난해 11월 초 인사담당자의 방문을 받는다. 찾아온 인사담당자는 “후배들의 승진을 위해 무조건 명예퇴직을 하라”고 강요했다는 것.

두사람은 “아직 정년이 3년 이상 남아 있는데 직책없이 떠나게 하지 말고 명예롭게 퇴직할수 있는 길을 만들어 달라고 되레 부탁했다”고 했다. 그러자 인사담당자는 “그러면 대기발령을 낼 수 밖에 없다”며 떠났다.

이후 고위층이 만나자고 해 만났더니 “승진정원 확보를 위해 무조건적인 퇴직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후 12월 29일 인사담당자로부터 대기발령 통보를 받았다. 



공무원 임용령 제43조에는 무보직 발령이 가능한 경우로 휴직자의 복직, 파견자 복귀, 파면ㆍ해임ㆍ면직자 복귀 때 해당 직급에 결원이 없거나 1년 이상 장기국외훈련을 위해 2개월 이내에서 준비기간이 필요할 때 등을 들고 있다. 이들은 대기 발령 당시 파견자 복귀 신분였으나 고의적으로 지난 인사에서 보직을 주지 않고 대기 발령을 냈다.

이들은 대기발령으로 생활 전체가 엉망이 됐다고 했다. “자괴감과 무력감에 빠져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화를 내게 된다”며 “정신이 피폐해 져 사람들을 만나기도 무섭다”고 했다.

이들은 이 대기발령이 부당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지방공무원법 30조5항(보직관리의 원칙)에 위배 된다는 것. 이 조항에 따르면 파견자는 합당한 보직을 주도록 되어 있는데 대기발령을 냈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기 발령시 자택대기 원칙도 위배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말부터 이 두사람은 남산 청사와 우면산 서울시데이터센터 한구석에 사무실로 출근해야 했다. 출퇴근도 감시용 지문인식기를 달아 놓고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같은 상황에 있는 우리를 한 공간에 있으면 더 오래 버틸것이라며 둘을 견우와 직녀처럼 멀찍이 떨어트려 놨다고도 했다.

이뿐 아니다. 서울시는 이들에게 출근 명령을 합법화 하기 위해 다른 대기중인 공무원들과 달리 연구과제를 부여했다. 연구과제를 시킬려면 시정연구단에 정식으로 발령을 내서 시켜야 한다. 골방에 가둬놓고 좋은 결과를 얻을수 없다. 그러면서 제출한 연구과제는 전문가한테 평가를 받아 결과를 통보하겠다는 것이다. 미루어 짐작건대 결과는 보나 마나 뻔하다는 것.

이들은 매일 출근을 하고 연구도 수행하면서 급여는 150여만원 이상 줄었으며 수당과 교통비도 받지 못하고 있다.

대기발령 받아 남산에 출근하는 A씨 사무실에 달려있는 지문인식 잠금장치와 그 옆방에 달려 있는 일반 번호로 된 잠금장치가 비교 된다.
대기발령 받아 남산에 출근하는 A씨 사무실에 달려있는 지문인식 잠금장치와 그 옆방에 달려 있는 일반 번호로 된 잠금장치가 비교 된다.


서울시 조직문화에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승진자리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사람을 사지로 몰아 넣고 있다. 그렇게 몰아 넣는 사람들도 곧 그 사지로 들어간다는 생각은 못하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한 서울시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이 이런 상항을 모를리 없다”며 “시장이 자기사람을 낙하산으로 심기 위해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원순 시장 답지 않다는 얘기다.

또다른 관계자는 “시장의 지시없이는 공무원들이 할수 없는 일들”이라며 “선배를 나가라고 했던 인사라인들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 두명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 이 두사람의 희생 때문인지 박원순 시장은 조직문화를 혁신한다며 지난 3월 30일 고충처리 핫라인등을 담은 조직문화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이 조직문화 혁신 방안에도 불구하고 이 두사람은 오늘도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 울분을 토하고 있다.

이진용 기자/jycaf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