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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세피난처의 민낯 ①]미술경매 사전 조작까지…미술품 지하거래, 조세피난처에서 시작됐다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세계 1% 자산가들의 탐욕은 국제 미술시장의 구조까지 바꿔놓았다. 미술품을 비자금 조성이나 조세탈피를 위해 사용하는 부패권력의 행보는 전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지난해 역대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파블로 피카소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은 미술품 경매시장의 새 역사를 썼다고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역사 이면에는 세계 1% 자산가들의 검은 돈이 오가고 있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조직범죄 부패보도 프로젝트(OCCRP)는 7일(현지시간) 파나마 법무법인 ‘모색 폰세카’의 내부문서 ‘파나마 페이퍼스’를 조사한 결과, 세계 억만장자들이 역외 금융센터를 통해 형성한 대규모 미술품 지하시장과 자금세탁의 정황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현대 미술품 경매 역사상 가장 큰 전환기를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1997년 ‘빅터와 셀리 간츠 컬렉션’일 것이다. 영국 최대 경매회사 크리스티에서 파블로 피카소에서부터 제스퍼 존스, 에바 헤세까지 입체파ㆍ포스트 미니멀리즘의 거장들의 작품 58점이 무려 2억 650만 달러에 낙찰됐다. 


[그래픽=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당시 미술품은 예술품과 재테크 수단의 경계에 있었다. 이 사건 하나로 미술품이 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만연해졌다. 30년 동안 아트 바젤에 참가해온 뉴욕 소재 레빈아트그룹이 토드 레빈 부장은 “간츠 경매 하나로 미술품 경매의 지형이 바뀌었다”며 “이후 미술품 경매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모나코의 ‘조만장자’이자 세계적인 미술품 딜러, 데이비드 나마드 [사진=게티이미지]

당시 경매된 작품 중에는 지난해 5월 역대 최고 미술품 경매가를 기록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 유화도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미술품 경매의 역사를 새로 쓴 ‘빅터와 셀리 간츠 컬렉션’ 사건이 사전에 모의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ICIJ와 OCCRP는 ‘파나마 페이퍼스’에 크리스티와 낙찰인, 그리고 간츠 부부의 자손들이 사전에 경매가를 놓고 흥정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뉴질랜드령 니우에 섬에 설립된 심스부리 인터내셔널 회사가 그 주인공이었다. 모색 폰세카를 통해 설립된 이 회사는 간츠 컬렉션의 경매가 시작하기 한 달 전 설립됐다. 한 달 뒤 간츠 컬렉션을 1억 6800만 달러에 구입해간 이 회사의 소유주는 다름아닌 영국 억만장자 조 루이스였다. 그는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크리스티 경매사와 간츠 부부의 자손들 모두 ICIJ의 인터뷰를 거부했지만, 기록상 확인된 바는 그랬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역사상 가장 비싼 미술품으로 꼽히는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은 당시 익명의 사우디 아라비아 부호에게 낙찰됐다. 당시 가격도 사상 최고가로 꼽힌다. 모색 폰세카의 문서 확인 결과, 그는 사우디 아라비아 부호가 아니었다. 억만장자도 아닌 모나코의 ‘조만장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품 딜러, 데이비드 나마드였다. 모나코가 제공하는 각종 비과세 혜택에도 불과하고 그는 역외 회사를 설립해 각종 미술품을 사들인 정황이 파나마 페이퍼스를 통해 확인됐다.

나마드 가족이 운영한 것은 다름 아닌 거대 역외 미술시장이었다. 모색 폰세카 문서 확인결과, 데이비드 나마드와 그의 형 귀스페 나마드, 동생 에즈라 나마드는 파나마에 ’인터내셔널 아트 센터’라는 회사를 설립해 대규모 미술시장을 형성했다. 이들은 미술품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속세, 자산소득세의 부담을 회피했다. ICIJ는 ‘파나마 페이퍼스’ 확인 결과, 이들은 미술품을 역외 회사의 계좌로 빼돌려 자금을 세탁하고 있었다.

이들이 형성한 ‘검은’ 미술시장의 네트워크는 데이비드 나마드의 친형, 귀스페 나마드가 모색 폰세카를 통해 파나마에 ‘인터내셔널 아트 센터’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회사는 1989년 에드가 드가의 “무희”를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귀스페는 1995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스윈톤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스윈톤 인터내셔널은 데이비드 나마드와 소더비 간 미술품 거래를 중개한 회사였다. 당시 소더비는 데이비드 나마득 판매한 피카소의 유화와 에드가 드가의 “무희”컬렉션, 그리고 헨리 마티세의 작품들을 “개인 컬렉션”이라 소개했다. 소더비 경매를 통해 낙찰된 경매가는 고스란히 스윈톤 인터내셔널과 인터내셔널 아트센터로 전달됐다. 2001년까지 인터내셔널 아트 센터는 무기명 주식 발행으로 소유주가 불분명했지만, 귀스페의 소유 회사인 것으로 모색 폰세카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그리고 2008년 데이비드 나마드와 에즈라 나마드는 돌연 형 귀스페와 함께 이 회사의 대주주가 됐다.

파나마 페이퍼스에 따르면 나마드 가문 외에도 많은 자산가들이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미술품의 가치를 훼손하는 검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벌어들인 돈을 미술품을 통해 해외나 케이먼 군도, 파나마 등 역외 ‘셸기업’(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의 계좌로 빼돌렸다. 미국 CNN머니는 지난 2014년 중국 부자들이 미술품을 활용해 돈을 세탁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미술품을 돈세탁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중국뿐만이 아니었다.

한편, 미국 뉴욕 맨하튼에서 갤러리도 운영하고 있는 나마드 일가는 지난해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지팡이를 들고 앚은 사람’을 둘러싼 소송전에 휘말렸다. 이 과정에서 미국 법원은 나마드 가문이 운영하는 갤러리의 주요 문서들이 파나마로 흘러 들어간 정황을 포착한 상태였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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