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슈퍼리치] ‘파나마 페이퍼’의 온상 캐리비안 국가들의 2조원대 ‘여권산업’
[헤럴드경제=윤현종 기자ㆍ김세리 인턴기자] 각국 고위ㆍ유명인사들의 국외 탈세를 폭로한 ‘파나마 페이퍼(Panama Papers)’의 여파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버진 아일랜드로 대표되는 캐리비안 국가들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각종 세제 혜택과 느슨한 관련 규제로 탈세를 목적으로 한 전세계 페이퍼 컴퍼니들을 끌어모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약간의 돈만 내면 국적이나 시민권ㆍ영주권 등을 취득할 수 있는 이른바 ‘여권 산업’으로 전세계 부호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리브해의 대표적인 조세회피국 세인트키츠네비스의 전경

최근 미국의 포춘(Fortune)지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14년 한해 전세계의 슈퍼리치들이 다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들인 돈은 무려 20억달러, 우리돈으로 2조4000억원이 넘는다. 그 가운데 상당부분은 이들 캐리비안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는 분석이다.

이유가 있다. 싸게, 쉽게, 빨리 국적이나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도미니카의 경우 10만 달러, 우리돈 약 1억2000만원 정도를 내면 손쉽게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또다른 캐리비안 국가인 세인트키츠네비스(St. Kitts and Nevis)의 경우는 40만 달러 이상의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25만달러 이상의 기부를 하면 손쉽게 여권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중국부호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캐리비안의 섬나라 앤티가 바부다(Antigua and Barbuda)의 경우도 비슷한 금액을 투자하면 된다. 

벨리즈(Belize), 영국령 앵귈라(Anguilla) 같은 지역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지난해에도 이들 국가들은 최소 2000개 이상의 ‘국적 구입’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모두 이번에 문제가 되고있는 파나마 페이퍼에 등장하는 국가들이기도 하다. 

캐리비안의 국가들 [출처=야후트레블]

각국의 부자들이 이곳의 국적을 취득하는 목적은 간단하다. 대부분 국가들이 소득세와 재산세를 사실상 면제해주기 때문이다. 일부 재산세가 부과되는 나라가 있지만 1%미만이다. 더불어 외국환관리법의 규제가 적고 거래내역의 노출도 쉽지 않다. 본국에서 벌어들인 큰 돈을 은닉하기 좋다. 2015년 초 미 연방 의회조사처(CRS)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세회피처로 분류한 캐리비안 국가는 총 16개국에 이른다. 

잭키 쉬 광저우 트렌디그룹 회장

특히나 이들 국가에는 미국이나 유럽등 선진국 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출신의 신흥 부호들이 많이 몰려드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세이트키츠네비스의 국적 취득자의 절반은 러시아와 중국의 부자들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국 의류기업인 광저우 트렌디그룹 잭키 쉬(Jacky Xu) 회장이 대표적이다. 개인자산 13억달러를 보유한 그는 서울면적 43%(261㎢), 인구 5만명에 불과한 캐리비안 국가 세인트키츠네비스의 영주권을 취득했다. 쉬 회장의 실제 거주지는 사업 근거지이기도 한 중국 선전(深玔)이지만, 세인트키츠네비스로부터 상당한 세제 혜택을 받고 있다.

캐리비안의 국가들이 이같이 ‘여권 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른 데는 이유가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쿠바와 자메이카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인구 100만명, 면적 500㎢ 미만으로 이뤄진 이들 국가들에는 변변한 산업 기반이 없다. 그저 휴향지의 기능만 해왔기 때문에 외자 유치도 쉽지 않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투자이민법을 뜯어 고친 것이 국가에 큰 수입원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세인트키츠네비스다. 

로펌 헨리 앤 파트너스의 스위스 출신 변호사 크리스티안 칼린

시민권 전문 국제 법률회사인 헨리 앤 파트너스(Henley&Partners)의 스위스 출신 변호사 크리스티안 칼린(Christian Kalin)이, 2006년 세인트키츠네비스에 새로운 이민법 개정을 제안하고 적극적으로 새 프로그램을 짜준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이곳에 부자들이 몰려들었다. 개정법 도입 이후 국내총상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10년 164%에서 2014년 80%로 줄어드는 성과를 맛봤다. 4년 만에 부채율을 80%나 절감할 수 있었던 데에는 투자이민제도의 영향이 컸다는게 전문 기관의 분석이다. 

2014년의 경우 이 캐리비안 소국의 국민총생산에서 투자이민관련으로 거둬들인 수익은 25%나 됐다. 남의 나라 부자들이 몰려드는 것에 대한 국민적인 저항감도 없다. 대부분 서류상 국민이 되는 경우가 많아 기존 국민들이 특별하 불편해지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도 않는 분위기다. 

카리브해에 위치한 쌍둥이 섬나라 앤티가바부다

물론 이같은 ‘여권 산업’이 캐리비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사이프러스 같은 경우도 250만 유로의 정도의 부동산 투자를 하는 사람은 여권을 취득할 수 있다. 

서방세계의 자유를 맛보고 싶은 중국과 러시아 등의 국가의 부자들 가운데에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의 시민권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일정일 이상 체류 등의 단서 조항이 많이 붙어있지만, 영국의 경우는 최소 200만 파운드 이상 투자한 사람에게 여권 취득의 기회가 주어진다. 

미국도 50만 달러 이상의 투자와 1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면 투자 이민 비자(EB-5 VIsa)를 획득할 수 있다. 실제로 IMF의 분석에 따르면 이를 취득하는 사람들의 80%는 중국인이다.

하지만 슈퍼리치들을 대상으로 한 ‘여권 산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모국(母國)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동경하는 캐나다의 경우는 역으로 슈퍼리치들이 다른나라의 여권을 취득하면서 골치를 앓고 있다.부자들의 투자이민 때문에 매년 60억달러에서 78억달러의 세금누수현상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무려 최상위 부자들의 해외 탈세를 메우기 위해 정부가 매년 1000억달러를 들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법을 피해가는 사람들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세금회피를 합법적으로 저지르도록 부실하게 설계된 법이 문제”라며 투자이민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serie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