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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 정책이 실기(失機)하지 않기 위한 충분조건
초소형 전기차 트위지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 유럽과 남미에서는 이미 상용화 단계다.

트위지는 물품 배달에 적합한 바퀴가 4개 달린 근거리 이동수단이다. 동력은 전기를 쓴다. 옆 유리창이나 범퍼도 없다. 좌석은 오토바이처럼 2개가 일렬로 놓여있다. 운전대가 원형이다.

지난해 한 국내 업체가 시험운행을 위해 이를 승용차로 볼 수 있는지 질의했다. 관계당국은 “현행법상 자동차는 승용차, 승합차, 화물차, 특수차, 이륜차 5종인데 트위지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로 볼 수 없어 임시운행이 불가하다”고 답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업체 의견이 받아들여져 당국은 초소형 자동차 정의 규정을 시행령에 반영하려 했다. 그러나 법에서 다뤄져야할 사안이라는 의견에 막혀 법률 개정으로 방향을 틀었다. 입법절차가 종료되려면 올 하반기는 가야 한다. 결국 답은 임시운행 허용인데 1년 넘게 끌고 있다. 기업은 자금ㆍ인력ㆍ기술뿐 아니라 시간과도 싸운다. 자동차를 5가지로 규정한 현행법은 1987년에 만들어져 30년 가까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닛산, BMW 등 5∼6개 글로벌업체가 전기차를 놓고 사활을 건 혁신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세계 전기차 시장규모는 678만대로 2019년 1000만대 돌파가 예상된다. 최근 테슬라는 4000만원대 보급형 전기차를 내놨다. 정부 보조금을 빼면 소비자가가 2000만원대다. 중국 전기차업체 비야디의 류쉐랑 아태지역 대표는 “2020년 이후엔 보조금 없이도 전기차가 기존 내연기관 차량과 경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곧 전기차 양산시대가 온다는 얘기다.

지금은 우리 TV가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브라운관TV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반전의 계기는 TV시장이 브라운관에서 평면TV로 바뀌면서 마련됐다.

평면TV 도입 초기 제품생산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세계에서 5개 정도였는데, 이들 중 화면 1인치당 원가를 100달러 이하로 먼저 낮추는 기업이 세계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당시 45인치 PDP TV 국내 판매가가 1200만∼1300만원 할 때다. 업체 간에 기술력 향상과 원가절감을 위한 극한의 경쟁이 벌어졌다. 원가를 낮추려면 양산체제를 갖춰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높은 가격으로는 국내 시장을 키울 수 없었고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았다. 작금의 전기차 시장이 20년 전 평면TV 시장 상황과 다르지 않다.

30∼40년 전 제정된 법령을 갖고 있다가 정책 대응에 실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령은 규제가 된다. 기업의 발목을 잡고 성장률을 낮춘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도 30년 전 만든 의료시설규정 때문에 일이 커졌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부는 시대에 맞는 법령을 갖고 시장을 규율해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공무원은 처리할 현안이 많다. 생업의 터가 시장에 있지 않아 현장을 꿰기도 어렵다. 법령으로 모든 일을 규율할 수도 없다. 제조업 분야 미래 성장동력은 전기차, 인공지능, 드론, 로봇, 바이오 산업 같은 데서 찾아야 하는데 이들 산업은 융합적이어서 전통 산업시대 법령으로 규율하는 데 한계가 있다. 트위지는 승용차도 이륜차도 아닌 제3의 차다. 법령에 공백이 생겼다. 사안에 따라 이 공백은 법령을 유연하게 적용해 메꿀 수 있다.

이때 공무원의 책임이 문제가 된다. 정책 실기를 막고 소모적인 규제를 차단하며 현장과 시차를 최대한 줄여 교감하는 정책을 위해 공무원의 책임을 덜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부처에서 법령을 고민할 때 감사원이 함께 하거나 민간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창의적으로 일하다 실패한 공무원에게 관대했다는 사례도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매사 종국에는 사람이다. 공무원을 살아 움직여 정책이 실기하지 않는 충분조건이 더 고민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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