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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앞에 있는 도박장 안간다고?“참새가 방앗간 지나치는 격
주택가 도박 경험자 경고


“자신이 사는 집 바로 앞에 화상경마장이 있는데 도박을 하지 않기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는 것보다 힘들죠. 저도 화상경마장이 없었다면 굳이 과천 경마장까지 가서 도박을 하진 않았을 겁니다.”

2004년 직장 동료의 권유로 의정부 내 화상경마장에서 처음 화상 경마를 접했던 이모(43) 씨에게 용산 화상경마장의 문제점에 대해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지금 당장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 몇년 지나면 도박 중독이 암세포처럼 자라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씨는 정오쯤 진행되는 경기에 돈을 걸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예상지를 읽고 판세를 분석했고 하루 종일 돈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5~6시에 경기가 모두 끝나면 이날 자신의 선택에 대해 ‘복기’를 했다.

그렇게 잃은 돈이 2억원. 저축은행과 캐피탈 업체는 물론이고 대부업체, 나중에는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고 가정을 간신히 꾸리고도 도박으로 이혼 직전까지 갔다. 돈을 모두 탕진하고서야 경마 도박을 끊었다. 빚은 아내의 명의로 낸 대출로 갚고 있다.

장모(42) 씨 역시 대학생 때 화상경마에 빠져 결국 학업을 중단한 뒤 20년 만에야 간신히 졸업장을 타야만 했다. 장 씨는 “경마는 다른 도박과 달리 말의 전적이나 혈통과 같은 정보를 가지고 우승할 말을 맞히는 우월감 같은게 있다”며 경마의 치명적 유혹에 대해 경고했다.

이 씨와 장 씨에 따르면 경마 도박에 빠지는 과정은 3단계로 나뉜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한다. 장 씨도 아는 선배의 권유로 5000원을 베팅하는 데서 시작했다. 처음 한두번 돈을 따면 맛을 들이며 판돈을 불려나간다. 그러나 게임이 계속될수록 따는 돈 보다 잃는 돈이 많아지면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밀어넣는다. 그럴수록 잃는 돈은 늘어나고 빚은 불어난다. 이때쯤 되면 스스로 “경마를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주말마다 경마장에 가는게 몸에 밴 습관이 돼 버렸기 때문.

이 씨는 “노숙자나 저소득층 처럼 인생의 앞길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 일수록 한탕 벌어보자는 마음으로 경마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바닥에선 그걸 ‘바닥치기’라고 부른다”며 “거기서 더 들어가면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있다”고 했다.

물론 경마 등이 선진국에선 건전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데, 우리는 도박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개개인 책임론도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도박문화도 사람에 따라서는 일종의 건전문화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중독으로 번져 패가망신할 수 있기에 개개인의 책임 차원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주택가 코앞의 화상경마장에 대해 우려했다. 처음에 호기심으로 시작하더라도 눈만 뜨면 앞에 보이는데 가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는 것. 물론 한국마사회 측은 한번 베팅하는 금액을 10만원으로 제한해 두고 있긴 하다. 그러나 경마 도박을 겪어본 사람들은 실제로 베팅 한도 10만원을 넘겼다고 경마장 측으로부터 제지 받은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장 씨는 “규정대로 한 경기에 10만원씩만 하더라도 일주일에 390만원, 한달이면 1600만원을 경마에 쓰는 건데 이걸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냐”며 “경마는 레저가 아닌 도박으로 보고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호연ㆍ고도예 기자/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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