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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둔의 경영자’ 임대홍 …마지막 길도 조용했다
[헤럴드경제=이정환 기자] 외부활동을 전혀 하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 고(故)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평소와 같이 조용한 길을 택했다.

지난 5일 노환으로 별세한 임대홍 창업주의 장례식은 외부 조문을 일절 받지 않고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지고 있다. 유가족과 고인의 유지에 따는 것이다. 별세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온 조문객과 조화도 돌려 보내고 있다. 각계 인사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지던 일반적인 재계원로의 장례식장과 다른 풍경이다.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내부 전광판에도 임 창업주의 빈소안내가 빠져 있다. 



대상그룹 관계자는 “고인이 워낙 검소하신 분이어서 생전에 조용히 장례를 치러 달라고 말씀해 오신 것으로 안다”며 “임창욱 명예회장도 창업회장의 영향을 받아 집안일 들을 외부에 밝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임 창업주는 경영 일선에 있을 때도 대외접촉을 거의 하지 않고 집무실에 머물며 연구ㆍ개발에만 집중한 사업가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미국의 은둔형 갑부였던 하워드 휴스와 비교해 ‘은둔형 경영자’라고 불렀다.

임 창업주는 국산 조미료 1호인 ‘미원’으로 한국 식품문화의 새장을 연 인물이다. 순수 국산기술 조미료를 처음 개발한 한국 식품업계의 큰 별인 임 창업주는 평생을 연구에 매달렸으며 검소한 생활로도 유명하다.

임 창업주는 1920년 전북 정읍에서 5남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리농림학교 수의축산학과를 졸업한 그는 1942년 고창군청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45년 광복 이후 그는 관심을 가졌던 모피가공업으로 사업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나이 25세 때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정읍에서 피혁공장을 열었고 2년후 부산에서 대림상공을 설립했다.

임 창업주가 조미료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전쟁 이후였다.

무역업을 하면서 일본을 오가던 그는 일본의 각종 상품이 한국시장에 밀려들어 오는 것에 주목했다. 그 중에서도 일본제 조미료 ‘아지노모도’가 국내 시장을 점령하는 것을 보고 1955년 일본으로 건너가 1년여간 조미료 제조공정을 배우고 돌아왔다.

1965년 1월 한국 최초의 조미료 공장인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를 세웠고, 이 회사는 그 해 6월 미원을 공식상표로 등록하고 본격적인 조미료 사업을 시작했다. 1962년에는 사명을 미원으로 변경했다.

미원은 1970년대부터 인도네시아, 일본, 홍콩 등 해외진출을 본격화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조미료 외에도 각종 장류와 냉동식품, 육가공식품 등을 생산하는 종합식품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임 창업주는 1987년 그룹회장직을 장남인 임창욱 현 명예회장에게 물려주고 경연일선에서 물러났다. 경영에서 손을 뗀 이후에도 임 창업주는 제품 개발과 연구를 놓지 않고 실험실에 머물렀다.

그는 출장을 가도 숙박료가 비싼 호텔을 찾지 않고 모텔이나 여관에만 묵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방 이동할 때도 새마을호를 타지 않았으며 서울 시내에서도 버스와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임 창업주는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등 사회환원에도 앞장 서 왔다.

외부에 나서지 않는 그의 성품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지고 있다. 


atto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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