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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쏟아붓는 설탕…쿡방 제정신인가
설탕범벅 요리 국민건강 위협
식습관 정착안된 아이들 무방비
스트레스탓 사회분위기도 한몫



“설탕은 많은 문제점을 해결해줘, 그게 내 생각이야”

스티븐 킹의 장편소설 ‘닥터 슬립’에서 콜라를 권하는 아브라에게 댄은 때 아닌 ‘설탕 예찬론’을 펼친다. 머릿속이 어지럽고 답답할 때 ‘달달한 것’은 오히려 약이라는 논리다. 설탕은 지금도 답답한 현대인에게 가끔은 위안을 주는 인공 첨가물이다. 과거에는 주요 에너지원으로 만병통치약이라 불렀다.

이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에 전 세계가 반기를 들었다. 비만, 고혈압 등 현대인의 질병을 해결하기 위한 결단이다. 당(糖)의 위해성에 대한 연구결과가 꾸준히 발표되고, 설탕 소비를 줄이기 위한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영국 정부는 설탕 함량이 높은 음료에 세금을 부과하는 ‘설탕세’ 방안을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당섭취 권장량을 하루 섭취량의 10%에서 5%로 낮췄다. 이제 노 슈거(No sugar)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움직임이다. 


그런데 ‘2016년의 대한민국’은 아직도 설탕에 너무 관대하다. 주말 저녁 텔레비전 앞에서 냄비 속에 거침없이 쏟아붓는 ‘설탕 폭포’를 보며 거부감 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쏴~’하는 소리와 함께 백종원이 쏟아붓는 설탕을 보며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낄 정도다. 심지어 모 프로그램에서는 “음식에 설탕을 넣으면 다 맛있다”는 ‘맛 이론’까지 서슴없이 던진다. ‘쿡방’(요리 프로그램)열풍이 불면서 집 안 주방까지 점령한 방송형 레시피들에게서 설탕에 대한 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설탕 불감증이 만연한 쿡방이 논란의 도마에 오른 것은 최근이다.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 씨는 지난 3일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설탕을 처발라서 팔든 먹든 그건 자유다. 문제는 방송”이라며 일침을 날렸다. 그는 “아무 음식에나 설탕을 처바르면서 괜찮다고 방송하는 게 과연 정상인가를 따지는 것”이라며 “시청률을 잡는다고 언론의 공공성까지 내팽개치지는 마시라”고 지적했다.

설탕이 예능의 필수요소인 ‘웃음 코드’ 중 하나라는 반론에 대해서도 관련업계는 냉소적인 반응이다. 특히 콘텐츠를 쉽게 학습하는 어린이들에게 ‘쿡방’이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선진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점진적으로 1인당 설탕 섭취량이 줄어들고 있다. 이미 설탕의 위해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뜻”이라며 “하지만 아직까지 식습관이 적립되지 않은 아이들은 (설탕에 대해서) ‘TV에서도 괜찮다고 했으니 먹어도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총 3년간 유아 청소년의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량은 여전히 권고기준을 넘어섰다.

저당에 ‘역행’하는 분위기를 단순히 쿡방에만 돌릴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달고 짜고 매운 ‘자극적인 맛’이 주목받는 것은 곧 그 사회의 ‘스트레스 지수’와 연관이 있다는 설명이다.

책 ‘트렌드 코리아 2016’에서는 “일시적 불황에는 매운맛을 선호하지만 장기 불황처럼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오히려 단맛을 선호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최근에는 설탕이 첨가된 음식이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와 인도 영양국립연구소 공동팀이 설탕음료와 스트레스의 연관성에 대해 실험한 결과 설탕음료 섭취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일종인 코르티솔과 결합하는 수용체의 발현을 저하,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회복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미정 기자/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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