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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분장사’ 급구 총선
마블과 DC코믹스는 미국 코믹북 시장의 오랜 라이벌이다. 만화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쟁쟁하지만 영화시장에서는 마블이 앞서 가고 있다. 마블의 ‘따로 또 같이’ 전략이 주효해서다. 마블의 슈퍼 히어로 무비 ‘토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는 그 자체로 대박을 떠뜨렸다. 관객들이 슈퍼 히어로 물에 식상할 무렵 마블은 이들을 한데 불러모은 ‘어벤저스’ 시리즈로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다.

마블의 영리한 마케팅에 자극받은 것일까. DC코믹스도 배트맨, 슈퍼맨 등 자사 영웅들이 협연하는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 영화 어딘지 어색하다. 본디 재미에 충실한 마블의 히어로물과 달리 DC코믹스는 배트맨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 철학적 의미를 담으려 애쓴다. 감독도 이런 성향에 맞는 인물을 고른다. 재미와 의미 두 토끼를 영웅들의 협연에서도 잡으려하다 보니 길을 잃고 말았다.

이 영화는 ‘모든 대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창한 카피를 내걸었지만 배트맨과 슈퍼맨이 왜 피 터지게 싸워야 하는지 영문을 알기 어렵다. 배트맨은 슈퍼맨이 악당과 결투를 벌이면서 메트로폴리스가 폐허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언젠가는 슈퍼맨이 악당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힘은 타락한다고 믿어서다. 고담시에서 무수히 봤기 때문이란다. 언젠가 타락할 지 모르는 외계인의 위험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둘이 치고받다보니 정의의 사도들이 속좁은 사내들로 쪼그라들었다. 흥행의 확장성을 노리다가 영웅들의 스타일이 구겨진 셈이다.


대결의 의미를 알기 힘든 구경거리가 또 하나 있다. 작금의 정치판이다. 민주주의 꽃이라는 총선 투표가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유권자들은 마음 둘 곳이 없다. 정당의 정체성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만 해도 거슬러 올라가면 60년 전통이라지 않은가. 군부독재 투쟁 세력과 시민운동 단체, 호남 중심의 광주민주화운동 세력이 솥의 세 발 처럼 정립해 지금에 이르렀다.그런데 이 당의 간판이 4년 전 여당을 진두지휘했던 적장 김종인이라니. 더민주 지지자들은 황당할 수 밖에 없다. 거꾸로 여당의 총선공약 사령탑은 야당의 정책위의장이었던 강봉균이다. 유권자들은 양당의 정치적 지향점이 도대체 뭔지 종잡을 수 없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문재인이 김종인을 대표로 내세운 것은 ‘박근혜 따라하기’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를 차용해 중도성향의 야권 표까지 쓸어담았다. 이른바 표의 확장성이다. 그러나 김종인은 대선 정국에 등판한 원포인트 릴리프였음이 금세 드러났다. 문재인은 김종인이 갖고있는 확장성을 탐냈다. 김종인은 자신의 정책과 이념을 소모품 처럼 쓰고 버린 박근혜를 심판할 기회를 갖고 싶었을 것이다.

표의 확장성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양당이 내부의 자산을 헌신짝 취급하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새누리당은 개혁적 보수의 아이콘인 유승민을 찍어내지 못해 안달이고 더민주는 중도층의 지지가 두터운 안철수를 밀어내 야권분열의 불리한 판세를 자초하지 않았나. 당의 진솔한 모습 보다는 당의 외모를 호감형으로 화장해 줄 분장사를 우대하다 보니 이 당 저 당 넘나드는 분장사만 넘쳐난다.

유랑정치와 분장사 우대 총선이 한국정치를 다시금 멍들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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