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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인도 스캔들’ 법정으로 갈까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고 천경자 화백의 작품으로 알려진 ‘미인도’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진위 여부 자체를 가리기에 앞서 지난한 법정 다툼이 예고됐다.

배금자 변호사를 포함한 10명의 변호사들이 ‘위작 미인도 사건의 공동변호인단’이라는 이름으로 28일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자료에는 ‘공동변호인단 발족 취지문’과 함께, ‘위작 미인도 폐기와 작가 인권 옹호를 위한 공동 변호인단’ 명단, 그리고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 씨와 김 씨의 남편 문범강 씨의 이름으로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국립현대미술관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 첨부됐다.

공동 변호인단 취지문에는 “대한민국 현대미술사에서 이러한 비극이 재발되어서는 안 되며, 작가의 인권이 유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공감한 뜻있는 변호사들이 모여 ‘위작 미인도 사건의 공동변호인단’을 발족하게 되었음을 알린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미인도 스캔들’은 이제 ‘소송전’으로 번지게 될까. 소송전이 자칫 일방적인 ‘폭로전’ 양상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상황을 좀 더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현 시점에서 소송과 관련한 몇가지 법률적인 의문들을 공동변호인단의 배금자 변호사에게 물었다.

1. 소송 내용 뭐가 될까

“저작자가 아닌 사람을 저작자로 표시하는 것은 명확한 저작권 침해 행위며, 작가 사후에 작가의 명예를 지속적으로 침해하는 것은 사자명예훼손에 해당한다. 근자에 국립현대미술관이 헌법기관인 국회에 공식적으로 허위보고를 제출한 것은 허위공문서 작성 등에 해당한다. 위작 미인도와 관련해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런 일련의 행위는 결국 작가의 인권을 지속적으로 침해하는 국가기관이 개인에게 가하는 인권유린 행위다.”

공동변호인단 발족사에 기재된 내용이다.

배 변호사는 헤럴드경제와 전화통화에서 “오는 4월 20일경 소송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소송 대상과 내용을 명확하게 적시하지 않았으나, 발족사에 따르면 저작권법 위반, 사자 명예훼손, 허위 공문서 작성 등에 관련한 민형사상 소송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미인도’를 둘러싸고 소송 가능성이 언급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30일, 천 화백의 장녀 이혜선씨를 제외한 장남 이남훈씨, 차녀 김정희씨, 김 씨의 남편 문범강씨, 그리고 차남 고 김종우 씨의 처 서재란씨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공식 기자간담회를 가진 이후부터 줄곧 예고돼 왔다.

정확히는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지낸 정 모씨가 지난해 11월 3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인도가 진품 결론이 내려진 바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이후부터다.

2. 사자 명예훼손 소송은 가능한가

사자 명예훼손은 친고죄이며, 친고죄는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이 경과하면 고소를 하지 못하게 돼 있다(형사소송법 제 230조 1항). 또한 사자 명예훼손의 고소권자는 사자의 친족, 또는 자손(형사소송법 227조)으로 한정돼 있다. 즉, 천 화백의 법적 유족들만이 사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앞서 지난 2월 말,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씨는 서울가정법원에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김정희씨와 고 김종우씨는 천 화백과 사실혼 관계였던 두번째 남편 고 김남중 씨의 호적에 올라 있다. 법적으로는 천 화백이 아닌 김남중 씨의 부인이 김씨 남매의 어머니로 돼 있다.

아직까지 친자확인 소송 결과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현 시점에서 김정희 씨가 천 화백의 유족으로서 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배 변호사는 “아직 친자확인소송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호적에 올라가 있지 않아도 친자임이 증명되면 고소건이 증명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며 “오는 4월말 친자확인소송 건 변론 기일이 잡혀 있고, 판결 선고는 5월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형사상 고소 시점도 민감한 문제다. 특히 친고죄인 사자 명예훼손 소송은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이뤄져야 한다.

배 변호사는 “사자명예훼손 관련 최단기간 고소 기간을 정모씨가 언론 인터뷰를 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사자 명예훼손 소송은 오는 5월 3일 이내에 제기돼야 한다. 

A4 종이 한장 크기보다도 작은 이 그림 한 점이 수년간 국내 미술계를 뒤흔들고 있다. 논란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진짜 법정 다툼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3. ‘위작 미인도 사건 공동변호인단’의 의뢰인은 누구인가

28일 언론에 배포한 공동변호인단 발족 취지문에는 이들의 ‘의뢰인’이 누구인지 기재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천 화백의 유족인 네 자녀(장녀 이혜선, 장남 이남훈, 차녀 김정희, 차남 고 김종우)의 법률 대리인인지, 장녀를 제외한 나머지 자녀들인지, 장녀, 장남, 차남을 제외한 차녀 김정희씨 부부를 대리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구성된 변호인단인지 자료만 봐서는 정확히 알 수 없게 돼 있다.

법률대리인들의 정식 의뢰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배 변호사는 “김정희 교수 부부가 현대미술관에 보낸 공개서한과 입장을 같이 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김정희씨가) 유족 대표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고소를 하는 데 있어서 유족 전원이 의견 일치해야 한다는 법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이어 “최근 장녀 이혜선씨가 천 화백의 작품을 한 대학교에 기부한 것이야말로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상속인간 전원 합의가 없으면 (기증은) 무효”라고 덧붙였다.

4. 소송을 걸기 전 소송 여부를 공표한 것은 괜찮나

소송을 걸겠다고 미리 공표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상대가 누구인지 공공연하게 알려진 상태에서 소송 여부를 적시하는 것이 또 다른 명예훼손 소송을 부를 가능성은 없을까.

배 변호사는 “국립현대미술관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 대상에 해당하므로 공공기관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서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국립현대미술관 전 학예실장에 대해서는 “허위 사실을 낱낱이 적시함으로써 사자명예훼손 행위를 했다고 고소 대상으로 1차 경고를 한 것”이라며 “계속 방치했다가는 고인의 명예훼손이 점점 더 심각해 질 것으로 판단돼 경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은) 공동변호인단이 구성됐다고 알린 것 이 외에 다른 것은 없다”며 “내용증명을 보낸 것도 아니고, 국립현대미술관장에 공개서한을 보낸 것은 변호인단이 아닌 유족(김정희, 문범강씨) 이름으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5. ‘미인도 진품’ 주장은 모두 사자 명예훼손에 해당되나

정 전 학예실장은 천 화백의 일부 유족들이 소송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줄곧 “불공정한 게임”이라고 주장해 왔다. “소송하겠다는 말로 언로를 막아 합리적인 의심마저도 못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배 변호사는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든지 의견 표현의 자유가 있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된다”며 “천 화백이 미인도를 진품으로 인정했다는 등, 허위 사실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 삼는 것일 뿐 진위 논쟁을 문제 삼는 게 아니므로 절대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회에 보고된 미인도 관련 내용에도 중대한 허위 사실이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며 “향후 소송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밝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공동변호인단은 민사소송을 통해 ‘미인도’ 폐기를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 침해와 소유권은 별개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배 변호사는 “미인도는 천 화백이 그리지 않은 위작임을 우리가 입증할 것이고, 위작인 저작권 침해물은 폐기 청구할 수 있도록 저작권법에 돼 있다”고 주장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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