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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맛’, 프로메테우스가 준 만능 향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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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류는 기본, 과일·버터·채소·술까지 파고드는 훈제

보존성 높고 항균·향미 좋지만 발암물질·과다 나트륨 오히려 건강에 害 될수도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바야흐로 ‘불맛’의 시대다. TV 먹방을 통해 점화된 중식의 인기로 불맛을 입힌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외식은 물론이고 짬뽕라면ㆍ짜장라면 등 가공식품에도 매캐한 불의 냄새가 진동한다. 집에서 불맛을 내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면서, 훈연액이나 토치(휴대용 화염 분출기) 같은 제품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서양에서는 이미 몇해전부터 불맛의 대표적 형태인 ‘훈제’가 대세 요리 트렌드로 떠올랐다. 미국의 식품유통 전문가 필 렘퍼트 슈퍼마켓구루닷컴의 최고경영자, 브랜드 개발회사 스털링라이스그룹(SRG), 시카고트리뷴, CBS 등은 2015년도 주요 식품 트렌드 10가지 중 하나로 훈제를 꼽은 바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프로메테우스가 전해준 향신료

대세임을 입증할만큼 훈제 제품군은 굉장히 다양하다. 훈제라는 키워드가 식품외식시장에 크게 주목받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빈곤한 상상력을 아무리 발휘해도 육류, 생선, 건어물, 계란 이외의 것을 떠올리기 힘들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과일, 버터, 채소, 술 할 것 없이 모조리 훈제된다. 가히 모든 음식에 넣을 수 있는 향신료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미국 식품공학회(IFT)가 발간하는 ‘푸드테크놀로지’는 이미 2014년에 “전통적으로 고기와 관련된 맛인 훈제가 이제 소다, 수제맥주, 술에서도 보인다”며 “앞으로 크랜베리, 꿀을 넣은 무알콜 음료에서도 (훈제 향을 입히는) 오크 나무를 더 많이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훈제가 이처럼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건네 준 이래 아주 오랜 기간 인간의 DNA에 축적된 기억들로 설명한다.

옥스포드 대학의 실험심리학 교수인 찰스 스펜스는 “진화론적으로 말하자면, 불과 연기는 고기를 굽는다는 신호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갈망하도록 프로그램됐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영국 쉐프인 헤스톤 블루멘탈은 안전과 생존에 대한 본능이 시킨 일이라고 했다. 그는 “훈제향을 좋아하는 것은 거의 원시시대부터 내려온 것이다. 나무 연기의 냄새는 불과 연관돼 있고, 요리할 열을 줄뿐만 아니라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고 야생동물로부터 지켜준다”라고 설명했다.

'리얼푸드'에 따르면 실제 훈제는 인간의 생존에 큰 기여를 했다. 쉽게 썩고 상해버리는 고기를 오랜 기간 보존하는 방법으로 이용돼 온 최고(最古)의 노하우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고기를 보존하기 위해 그냥 말리거나(건조), 소금에 절이거나(염장), 연기를 이용해 말리는(훈제) 등 세 가지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이 가운데 훈제는 목재를 태울 때 나오는 연기 속 항균ㆍ항산화 성분이 음식 표면에 붙어 저장성이 높아진다.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기원전 10세기경부터 그리스에서 고기 보관을 위해 훈제를 했다는 것이 있다.

또 온도와 습도가 높은 독일, 폴란드, 러시아 등 북유럽 지역에서 육류를 저장하는데 주로 이용했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스모킹 소시지가 발달한 이유다. 다만 20세기 중반 들어 화학보존료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거추장스러워 사용 빈도가 줄었을 뿐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무엇보다 진한 불맛…훈제법은


그럼에도 훈제음식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불맛을 내기 위한 다른 어떤 조리법보다 진한 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직화와 비교했을 때, 직화는 대부분 26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 육즙을 가둘 수 있도록 겉을 그슬린다. 이 때문에 연기가 고기 내부로 스며들 수 없어, 겉에서만 훈연향이 난다. 이에 비해 훈제는 고기 전체에서 향을 느낄 수 있다.

훈제요리 제조법으로는 크게 ‘냉훈법’, ‘온훈법’, ‘액훈법’ 등 세 가지가 꼽힌다. 냉훈법은 식품을 1개월 이상 보관할 수 있어서 저장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주로 햄, 소시지 등 비가열 육제품을 만들 때 사용하며, 버터와 치즈를 훈제시키는 데도 사용된다. 단백질이 열응고(열을 받아 굳어지는 현상)되지 않는 25도 이하의 저온에서 1~3주간 걸쳐 훈건(燻乾)한다. 훈연실 온도가 낮으면 건조속도가 떨어지고 반대로 높으면 원료가 변하기 쉽다.

반대로 온훈법은 저장성은 떨어지는 대신 향미가 좋아지는 것이 장점이다. 30~35도 사이에서 가공하며 온훈시간은 베이컨은 1~2일, 뼈 있는 햄은 1~3일 정도다. 과거에는 훈제요리법으로 자주 사용됐지만 최근에는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액훈법은 식품에 훈연액을 첨가하는 방법이다. 훈연액은 목재를 건류(乾溜)해 얻은 목초액을 다시 증류시킨 것이다. 첨가법에는 직접첨가법(주입법), 침지법, 도포법, 분무법 등이 있다.

또 나무에 따라서도 향이 크게 달라지는데, 가장 많이 이용되는 참나무와 떡갈나무를 비롯해 사과나무, 벚나무, 밤나무, 자작나무, 포플라, 플라타너스 등이 쓰인다.


[사진=게티이미지]

훈제의 역설…발암물질 등 건강 우려

훈제의 인기는 최근 들어서 큰 부침을 겪었다. 건강 문제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훈제는 웰빙 열풍이 불면서 화학보존료를 대체할 만한 보존방법으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연기 속 알데하이드나 페놀 등 발암성 물질이 훨씬 건강에 안좋다고 알려지면서다. 알데하이드나 페놀은 항균성이 있어 미생물 증식을 억제하고 훈제식품 특유의 향미를 갖게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연기에 포함된 독성물질을 제거하는 등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나트륨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훈제 과정에서 염지를 해 소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훈제식품은 훈제하지 않았을 때보다 염분 농도가 최대 50배나 높다는 조사결과가 있을 정도다.

훈제식품이 건강에 좋지 않은 물질을 갖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여러 위험요소를 고려하더라도 1~2주일에 한두 번 정도 먹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과도한 염분 섭취를 피해야 하는 고혈압이나 심장병 환자들은 가급적 먹지 말아야 하고, 훈제식품을 먹을 때는 과일이나 채소를 곁들이고 물을 충분히 마실 필요가 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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