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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 신문 이야기>30년전에도 ‘인공지능(AI)’은 히트상품?
[헤럴드경제=최정호 기자]최근 우리 사회는 인공지능(AI) 열풍이다. 형체도 없는 컴퓨터 프로그램 ‘알파고’가 인류 최고의 바둑 고수 중 한명인 이세돌 9단을 파죽지세로 이긴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사람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에 지배받는 현실을 걱정하고 있다. 인공지능 울트론이 현생 인류를 파멸 직전까지 몰고가는 악몽이 이미 현재 진행되고 있다는 공포다.

이런 인공지능에 대한 이상열기는 개인 뿐만이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 또 기업들도 나서 인공지능 육성 정책을 만들고 펀드를 조성하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이라는 단어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정부와 경제단체의 보고서는 이제 ‘인공지능’ 없이는 말이 안될 정도다. 

하지만 약 35년전인 1990년대 초반에도 인공지능은 뜨거운 감자였다. 퍼지 세탁기, 그리고 카오스 세탁기 경쟁이다. 당시 금성사(현 LG전자)와 삼성전자는 ‘퍼지 이론‘과 ’카오스 이론‘을 적용한 세탁기, 그리고 다양한 가전 제품을 출시하며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펼쳤다. 196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퍼지 이론은, 애매모호한 개념을 수학적으로 풀어냈다. “예쁘다”나 “애매한” 인간의 감정을 컴퓨터가 읽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이론화 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1990년대 일본 가전 회사들이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고, 우리나라 제조사들도 관련 센서를 장착한 제품을 잇달아 선보였다. 퍼지 경쟁은 이듬해 우주의 작동 원리를 풀어낸 ‘카오스’ 경쟁으로까지 한발 더 나간다. 이미 30년 전, 우리 기업들은 주관을 객관화 하는 수준을 넘어, 우주의 원리까지 세탁기와 TV 같은 가전제품 안에 담는 수준에 오른 것이다.


1993년 ‘카오스 세탁기’로 이름 붙여진 금성사 세탁기를 소개한 기사다.

“규칙적인 현상을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첨단과학이론인 ‘카오스’(CHAOS:혼돈)이론을 가전제품에 적용함으로써 제품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기술이 국내에서 처음 개발됐다. (중략) 금성사는 이번 개발로 카오스이론을 제품에 응용할 수 있는 독자기술을 확보하게 됐다면서 현재 원천특허 3건, 응용특허 7건등 10건의 국내특허출원을 비롯해 일본, 미국등 해외에도 특허를 출원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자체개발한 카오스 시뮬레이터는 다른 카오스현상도 신호데이터를 추출해컴퓨터에 입력시키기만 하면 분석이 가능한 소프트웨어로서 타분야, 타제품에도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략) 카오스이론의 응용분야로는 △일기예보, 바닷물의 흐름, 대기흐름의 분석등 기초분야를 비롯해 △유체제어, 정보압축 및 신장기술, 화상.음성인식, 암호해독등 공학분야 △건강진단시스템, 뇌파.맥파해석, 피로.스트레스판정등 의학분야 △선거예측, 주가예측등 정치.경제학분야 △교통량예측, 마약.전염병환자수 예측등 사회학분야등 인류생활 전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요즘 유행하는 ‘인공지능’의 기초 중 하나인 ‘빅데이터’ 기반 다양한 솔루션의 시초가 이미 30년전에 국내 가전제조사에 의해 세탁기로 상용화까지 완성된 것이다. 아래는 통돌이로, 위로는 드럼으로 돌아가고, 또 엉킴은 물론 묵은 때까지 속시원하게 빨아준다는 200만원이 넘는 요즘 최신형 세탁기도 당시 카오스 세탁기 설명 문구 앞에서는 초라해보일 정도다.

두 회사의 이 같은 인공지능 경쟁은 당시 무척 뜨거운 이슈였다. 당시 또 다른 기사에서는 삼성전자와 금성사가 퍼지와 카오스 연구개발(R&D)에 당시 돈으로 500억원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30년 동안 물가 상승률과 화폐 가치 변화 등을 감안하면 최근 정부가 밝힌 ‘인공지능’ 투자 금액 연 300억원의 몇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퍼지’가 안들어간 제품은 앞으로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당시 기사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지난 15일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는 “인공지능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라고 선을 그었다. 미리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또 갑작스럽게 호들갑 떨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30여년 전 우린 요즘 화두가 된 인공지능보다 더 심오한 수학의 원리, 그리고 우주의 이론을 세탁기에 담았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손빨래 만큼 속 시원하게 빨리진 않는다”고 불평하신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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