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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현왕후의 병은 통풍 아닌 척추결핵”…승정원일기 현대적 진단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중전께서 며칠 전부터 좌우 양쪽의 다리에 통증이 나타나더니 어제저녁 이후로 통증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중략) 중전의 다리 통증은 오른쪽이 특히 심하며 환도혈(環跳穴:엉덩이 고관절) 위 허리 쪽 척추 부근이 현저하게 부어올라 통증을 참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밤이 되면 그 증세가 훨씬 심해진다 합니다. 신들이 여러 어의와 상의한 결과, 습열(濕熱)이 아래로 흘러 경락이 막혀 생긴 통풍증상이라고 모두들 말합니다.”

인현왕후(1667~1701)는 정치적 우여곡절끝에 폐서인 명령 후 중전 복권에 성공했지만, 국모의 자리에 다시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이 글은 비운으로 생을 마감한 인현왕후의 사망전 병세를 그린 승정원 일기(숙종 26년 3월 26일)의 내용이다.

당시 의관이 진단한 그의 병명은 통풍(痛風)이었다. 하지만 최채기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은 당시 기록에 나타난 증상을 오늘날 의학으로 되짚어 본 결과, 인현왕후는 척추결핵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14일 밝혔다. 



당시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엉덩이 고관절 위 허리쪽 출추 부근이 현저히 부어오른 증상이 나타난지 한 달 보름 뒤, 고름이 생기기 시작해 이듬해 8월 14일 숨을 거둘 때까지 이 증상은 계속 됐고, 그 사이에 무릎 위로 통증이 옮겨 다니거나 다리에 냉기가 돌기도 하고 복부가 부어오르기도 하는 등 여러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주지하다시피 최근들어 스트레스가 많고 음주가 잦은 3050 직장남성들에게 가끔 나타나는 통풍은 혈액 내 요산(尿酸)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요산염 결정이 관절의 연골, 힘줄, 주위 조직에 침착되는 질병이다. 환자의 90% 이상이 엄지발가락에 발생하며, 그 외에 발등, 발목, 무릎관절에 나타난다.

최 연구원은 “그런데 요즘 의사들에 따르면, 이 통풍은 인현왕후에게 나타난 증상과는 차이가 있다. 우선 발병 부위가 서로 다르고 연령대나 성별에 있어서도 맞지 않는다. 척추전문의를 만나 인현왕후의 증상을 물었더니 대뜸 ‘통풍이 아니라 척추결핵(spinal tuberculosis)’이라고 했다. 통풍은 인현왕후처럼 고름이 생기지 않으며 허리 쪽에 발병하지도 않는다는 게 전문의의 소견”이라고 전했다.

척추결핵은 결핵균이 혈액 내로 침투하면서 혈류를 타고 이동하다 척추에 정착하여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이다. 척추 자체나 주변 조직의 염증과 괴사로 인해 통증이 심해지고, 증상이 진행되면서 척수 신경 압박 때문에 다리가 저리거나 신경을 따라 통증이 뻗칠 수 있다. 악화되면 손상된 척추뼈 주위에 고름이 형성되고 그것이 주변 조직으로 퍼질 수 있다고 한다.

최 연구원은 “당시 의학 수준으로 미뤄, 잘못 진단한 것이 아니라 현대의학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인현왕후의 경우 1년 5개월의 병세와 치료 보고가 상세히 기록돼 있는데, 만약 의학계에서 ‘ 승정원일기’에 관심을 갖고 이 기록들을 활용한다면 새로운 연구 성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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