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슈퍼리치]남자 누르고 큰 돈 거머쥔 ‘역대급’ 여인 3인방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윤현종 기자ㆍ김세리 인턴기자] 돌이켜 보면 ‘큰 돈’은 모두 남성들 차지였다. 막대한 부(富)를 안겨준 사업 등 외부활동은 남자만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졌다. 오랜 옛날엔 여자가 개인 자산 갖는 것을 금하는 법 조항까지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는 남녀불평등 시대였다. 그나마 현대에 와서 여성 사유재산도 ‘당연히’ 인정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래서 제도 따위와 상관없이 ‘여성 부호’가 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상속이었다. 세대와 시대를 넘어 명실상부 슈퍼리치로 불릴만 한 여성은 모두 상속부자였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한 상속인이 아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경영에 일조하기도 하며 개인자산을 지녔다. 이 가운데엔 수백년 전 과거 인물도 있다. 

예카테리나 2세

1위 예카테리나 2세(러시아)
출생:1729∼1796
개인자산:1조 5000억달러(추정)

러시아에서 ‘대제’로 불리는 인물 중 한 사람인 예카테리나 2세가 보유한 자산은 천문학적이었다. 1700년대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5%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다. 그는 34년간 왕관을 쓰며 러시아 역사상 가장 오래 통치한 여성군주로 이름을 남겼다.

그의 재위기간은 소위 러시아의 ‘황금시대’로 불린다. 경제적 부흥 때문이었다. 남편인 표트르3세가 정치적으로 무능하다고 판단한 그는 여러 귀족과 백성ㆍ군부의 지지를 얻어 남편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랐다. 프로이센(19세기 통일 전 독일의 전신)과 벌인 7년 전쟁 후 피폐했던 러시아는 예카테리나 2세의 통치 아래서 활력을 되찾았다. 남성 못지 않은 야심과 대담한 정책 추진이 이뤄낸 결과다.

그는 계몽과 예술, 특히 여성 교육에도 관심이 깊었다. 유럽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교육기관 ‘스몰니 학원’을 세웠다. 또한 희극대본ㆍ소설ㆍ회고록 등을 직접 쓰며 예술 애호가의 면모를 보였다. 지금의 에르미타쥬 박물관도 그의 소유였다.

1768년엔 정부재정을 전담하는 국가기밀은행을 설립했다. 도시마다 은행 지점들이 세워졌다. 지점이 들어선 도시는 ‘정부 도시’라고 불렸다. 은전과 금전의 사용이 늘며 외국과의 무역 등 상업활동도 활기를 띠게 됐다.

클레오파트라 7세로 추정되는 흉상. 베를린 박물관 소재

2. 클레오파트라 7세(이집트)
출생:기원전 69∼30
개인자산:598억달러

클레오파트라 7세는 이집트 파라오(최고 통치자)였다. 당시 이집트의 거대한 산업들은 모두 그의 손 안에 있었다.

그는 600억달러에 육박하는 자산을 주로 ‘정치적 목표’를 위해 썼다. 당시 지중해 종주국이었던 로마제국의 우산을 벗고 이집트의 독립을 유지하거나, 적어도 로마와 공존하는 게 그가 지닌 일종의 사명이었다. 재위 기간 벌인 전쟁 때문에 자신의 돈을 쏟아부었을 뿐 아니라 해외 투자자들에게 거액을 빌렸단 기록도 있다.

그러나 목표 달성은 만만찮았다.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의 권력싸움으로 한때 왕위에서 물러난 적도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실력자였던 카이사르에게 “반드시 당신을 만나야 한다”며 도움을 청했다.

결국 그는 카이사르 덕에 권좌를 되찾았다. 둘의 밀월관계는 곧 이집트와 로마의 공존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뒤를 이은 부하 안토니우스와도 같은 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는 오래 가지 못했다. 안토니우스와 로마의 권력을 양분했던 옥타비아누스(후의 로마 초대황제가 된 아우구투스)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몰아냈다. 이후 이집트는 로마 땅이 되고 말았다. 오랜 염원이었던 이집트 독립은 물거품이 됐다. 클레오파트라가 지녔던 천문학적 자산도 같이 사라졌다. 

릴리안 베탕쿠르

3. 릴리안 베탕쿠르(프랑스)
출생:1922∼현재
자산:361억달러

릴리안 베탕쿠르는 세계 최대 화장품 회사 로레알의 유일한 상속인이다. 프랑스 부호 중 개인자산 기준으론 부동의 1위다. 올해 포브스가 낸 억만장자 순위에서도 프랑스 최대부자이자 현존하는 여성 최대부호 자리를 지켰다.

그는 1957년 창업주인 아버지 외젠 슈엘러가 세상을 뜨자 35살의 나이로 회사를 이어받았다. 1995년까지 로레알 이사회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임기 중이던 1987년엔 남편ㆍ딸과 함께 의료와 문화사업을 지원하는 베탕쿠르 슐러 재단도 세웠다.

이사회에서 내려온 뒤에도 그는 여전히 회사를 장악하고 있다. 2014년엔 자사주 매입 등으로 로레알 지분율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베탕쿠르는 치매로 인해 수백억 달러 규모 자산을 놓고 딸과 싸웠다. 8년을 끌던 이 분쟁은 프랑스 지방법원이 베탕쿠르가 환자인 점을 악용해 금품을 갈취한 지인과 재산 관리인 등에게 실형을 선고하며 막을 내렸다.

factism@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