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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하이힐ㆍ콘돔ㆍ커피까지...입양아 9명 ‘비밀의 부자가문’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천예선 기자ㆍ김세리 인턴기자] 할리우드 스타 톰크루즈가 즐겨 입기로 소문난 ‘벨스타프’의 라이더 자켓, 여성들의 짜릿한 로망을 자극하는 ‘지미추’ 구두, 오레오 쿠키로 유명한 ‘몬델레즈’, 그리고 담배와 함께 전세계 편의점의 간판대를 늘 지키고 있는 콘돔 브랜드 ‘듀렉스‘, 20대들이 즐기는 패션브랜드 ‘캘빈클라인’ 향수까지.

아무관련 없어 보이는 이 이름들을 늘어놓은 데는 이유가 있다. 알고보면 모두 한 가문에서 운영권을 쥐고 있는 브랜드들이라는 점. 바로 ‘라이만(Reimann) 패밀리’ 이야기다.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이 집안은 현재 독일계 거대 투자사 벤키저홀딩스(JAB Holding Company)를 통해 수많은 글로벌 소비재 브랜드들을 거머쥐고 있다. 이른바 ‘숨어있는’ 알짜 부자가문인 셈이다. 

벨스타프 자켓을 입은 톰 크루즈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위치하고 있는 JAB홀딩스 주식의 95%를 보유하고 있는 라이만 가문의 총 자산은 약 190억달러. 우리돈으로 약 23조원에 달한다. 

가족 구성원 중 볼프강 라이만(63), 마티아스 라이만(50), 슈테판 라이만(52), 레나테 라이만(64), 안드레아 라이만(59) 등 무려 5명이 각종 시장조사기관과 언론이 집계하는 세계 부호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10억달러대 자산으로 가문에서 ‘가장 덜 부유한’ 인물이자 미국 시민권자인 여성 안드레아를 제외한 4명의 개인 자산은 최소 40억달러(4조8000억원)에 달한다.

지미추 구두(왼쪽부터), 듀렉스 콘돔, 캘빈클라인 향수

하지만 라이만 가문이 관심을 받는 것은 단순히 막대한 자산 때문만은 아니다. 라이만 가문은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부자집안이다. 유럽과 미국에선 부호 순위에 오르내릴 정도로 명성을 떨치지만, 정작가문을 이끄는 주요 인물들의 사업가로서의 활약상은 찾아볼 수 없다.

이유가 있다. 철저한 가문의 규칙 때문이다. 대대로 회사 주식을 물려받고는 있지만 경영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고 투자에만 집중한다. 

실제로 현재도 라이만 가문의 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해나가는 것은 바트 베흐트, 페터 하프, 올리비어 고뎃 등 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직을 맡고 있는 전문 경영인들이다. 

여기에는 “경영에 뛰어들지 않는다”는 라이만가의 가칙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18살이 되면 공적인 일에 가능한 한 관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한다. 

이 덕분일까. 라이만 가문에는 ‘가장 잡음이 없는 억만장자 가문’이란 평가도 뒤 따른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현재 라이먼 가문을 이끌고 있는 볼프강, 마티아스, 슈테판 등 5인이 모두 입양아 출신이라는 점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들은 모두 양아버지였던 가문의 두 번째 승계자 알버트 라이만(Albert Reimann)의 9명 입양자식 중 5인이다. 이들 외의 4명은 갖고 있던 회사 주식을 5명에게 넘기면서 벤키저홀딩스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왔다. 

혈육도 아닌 입양아 형제들끼리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는 와중에도 분란이 없다는 점이 독특하다. 게다가 물려받은 재산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형제도 없다. 한 부모 밑에서 나고도 재산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게 일반적인 동아시아권의 많은 재벌들에 익숙한 우리 관점에서 보면 아주 이례적인 경우다.

라이만 가문이 JAB를 운영하게 된 사연 역시 독특하다. 사실 JAB는 라이만 가문이 설립한 회사가 아니다. 독일의 화학자였던 루드비히 라이만(Ludwig Reimann)이 1823년 화학공정사 벤키저에 들어갔다. 능력을 인정받은 루드비히는 벤키저의 창업자와 공동으로 또 다른 화학회사 루드비히스하펜을 세웠고 이것이 JAB의 모태가 된다. 

루드비히는 이후 벤키저 가문의 사위로 들어가면서 사업에서 손을 뗐는데, 그의 증손자인 알버트가 다시 회사의 운영권을 잡으며 지금의 투자중심회사로 변신시켰고, 탁월한 감각으로 가문의 부를 크게 늘렸다. 

1984년 알버트는 죽을 때 9명의 입양 자식에게 각각 회사 주식의 11.1%씩을 물려줬다. 벤키저의 창업자인 요한 아담 벤키저로부터 회사를 이어받고 키워낸 라이만가의 ‘JAB 정복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커피메이커 큐리그 캡슐

조용한 부호가문인 라이만 가문은 지난해 하반기 오랜만에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JAB가 또 다른 커피메이커 제조사 ‘큐리그그린마운틴’을 139억달러(약 16조3000억원)에 인수하면서다. 당시 커피업계 사상 최대규모의 인수합병이었다. 이로써 현재 커피시장 점유율 1위(22%)인 네슬레를 바짝 추격하게 됐다. 

인수계획 소식이 언론에 처음 알려졌을 때는 큐리그의 창업자 밥스틸러의 주식가치가 3억달러 가까이나 뛰며 한차례 주식시장에 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커피는 사실 라이만가가 왕성하게 벌여오던 사업 분야중의 하나다. 2014년엔 네덜란드의 커피강자 마스터블랜더와 커피사업을 통합하면서 연간수입 70억달러가 넘는 새 브랜드 제이콥스 도우 에그버츠(JDE)를 탄생시켰다. 세계 최고의 커피전문회사로 키워내기 위한 라이만 일가의 전략이다. 새 회사의 회장은 JAB의 총수 바트 베흐트가 맡았다.

같은 해 피츠커피앤티의 유기농 차(茶) 브랜드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고품질 프리미엄 브랜드 ‘카리부커피’와 ‘아인슈타인 노아 레스토랑’,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즈 ‘에스프레소 하우스’, 덴마크 최대 커피샵 ‘바레쏘커피’ 등을 인수한 전례가 있다.

사실 라이만 가문의 사업에는 한가지 포인트가 있다. 관계 없어보이는 구두, 패션, 향수, 생필품 등의 사업에 마구잡이 투자가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조업이나 첨단산업 등이 아닌 오직 생활소비재 산업에의 투자만 이어오는 점이다. 유럽인들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부분이자, 경기상황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프랑스 화장품제조사 코티의 지분 70%, 영국의 생활용품 제조사 레킷벤키저의 지분 10.6%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각 분야의 글로벌 1위 기업들은 보유하지 않았다.

하지만 커피산업에서 부동의 1위인 네슬레를 겨냥하고 나서면서, 시장 전문가들도 그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세계시장 1위를 노리고 나선만큼, “너무나도 독특하고 은밀한 부자가문이 더이상 밀실에 숨어있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ser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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