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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하메드를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파키스탄의 변화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선지자 모하메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손을 드세요.”

지난 1월 파키스탄 펀자브 주의 한 이슬람 교당에 성직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설교를 듣던 15살 소년 안와르는 손을 번쩍 들었다. ‘모하메드를 사랑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는 말로 잘못 듣고 한 실수였다.

그러나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다. 성직자는 “안와르가 신성을 모독했다”고 비난했다. 호되게 당한 소년은 예배 후 집으로 돌아가 자신이 잘못 들어 올린 손을 직접 잘랐다. 그리고 이를 쟁반에 올려 성직자에게 바쳤다.

사건이 알려진 뒤 파키스탄 경찰은 ‘폭력을 조장하는 증오연설을 했다’며 성직자를 체포했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주민들은 모하메드에 대한 사랑을 증명한 안와르를 영웅이라 칭찬했고, 소년의 아버지 역시 아들을 자랑스러워 했다.

나와즈 샤리프 총리(왼쪽)가 지난 10월 미국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헌법에 ‘이슬람 국가’라고 명시돼 있는 파키스탄은 인구의 97%가 이슬람 신앙을 갖고 있다. 극단적이라고 보일만큼의 원리주의가 사회에 크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가정폭력은 너무나 흔하고, 명예살인(순결이나 정조를 잃은, 혹은 간통한 여성을 상대로 남편 등 가족 구성원이 살해하는 것)으로 사망하는 여성도 한 해 수백명에 달한다.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따른 통치를 주장하는 테러집단도 활개를 치고 다닌다. 성직자가 안와르를 비난했던 것도 모하메드를 모욕하면 최대 사형까지 가능하도록 한, 악명높은 ‘신성모독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성모독법을 개정하려 했던 펀자브 주지사가 살해당했을 정도다.

그런 파키스탄에서 최근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나와즈 샤리프 총리가 집권하면서부터다. 샤리프 총리는 2013년 5월 이슬람 종교 집단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수상 자리에 올랐지만, 경제 발전을 앞세우며 ‘더 자유로운 파키스탄’을 만들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변화의 내용은 하나같이 이슬람 성직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다.

샤리프 정권의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올해 초부터다. 지난 1월 유튜브에 대한 접근 금지를 해제한 것이 그 단초다. 당초 이슬람 성직자들은 이슬람을 모함하는 영상으로부터 파키스탄을 지키기 위해 유튜브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이를 묵살한 것이다.

같은 달 말에는 여당인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가 청소년의 결혼 허용 연령을 16세에서 18세로 올리는 법안을 제출했다. 비록 이슬람 성직자들이 “아동 결혼을 막는 것은 이슬람 이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반발해 법안이 철회되기는 했지만, 당은 더 진보적인 면을 보여줄 의지가 있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또 샤리프 총리의 동생인 샤바즈 샤리프가 총리로 있는 펀자브 주에서는 학대받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통과되기도 했다. 조만간 샤리프 정권은 여권 신장을 위해 여성의 출산 휴가와 양육에 대한 접근 권한을 확장하는 계획도 발표할 예정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샤리프 총리가 이러한 행보를 보이는 이유로 경제 발전 어젠다를 꼽았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파키스탄은 중국의 460억 달러 투자 약속이나 서방 기업의 투자에 기대를 걸고 있는데, 이슬람 극단주의가 사회를 지배할 경우 투자 유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샤리프 총리의 후계자로 꼽히는 딸 마리암(42)의 자유주의적인 성향 역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이슬람 집단의 반대는 크다. 종교학자인 아만 울라 하카니는 “샤리프와 여당이 자유주의적인 지도자가 됨으로써 미국과 서방국가들을 감동시키려 하고 있다. 이는 최악으로 돌아서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파키스탄 주요 정당인 자맛-이-이슬라미의 고위 당직자인 무하마드 이브라힘은 샤리프가 이슬람 집단의 저항에 축출될 수 있다고까지 전망했다. 실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처럼 과거 파키스탄의 개혁을 추구했던 지도자들은 강경한 이슬람 성직자의 반대에 부딪힌 바 있다. 부토 전 총리는 2007년 암살당했다.

그러나 샤리프 총리의 측근들은 샤리프 총리가 파키스탄을 이슬람 극단주의의 온상이라는 오명으로부터 구출해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샤리프 총리의 투자 부문 특별 보좌관인 미프타 이스마일은 “샤리프 총리는 매우 종교적인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종교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관용적이다”라며 “그는 파키스탄에 대한 편견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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