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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새학기 대학별곡①] 후배 못받은 폐과생들 ‘침묵의 봄’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학과 일에 관심 끊었어요.”

새학기, 대학 캠퍼스에 설렘을 잃어버린 학생들이 있다. 자신이 속한 학과가 사라지면서 후배를 받지 못하는 폐과생들이다. 교육당국의 대학구조개혁과 이에 맞춰 칼춤을 춘 대학 덕분에 학과가 폐지된 학생들은 후배없는 ‘폐족’이 됐고, 정체성 없이 합쳐진 학과 학생들은 울분을 삼키고 있다.

봄학기 개강을 코 앞에 둔 지난 23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서울캠퍼스.

각 학과의 학생회실은 새내기 맞이 준비를 하는 재학생들로 분주했다. 심리학과 학생회실 문 바깥으로는 학생들의 웃음 소리가 계속 새어나왔고, 철학과에서는 학생들이 몰려나와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교민속학과 사무실만은 조용했다. 이 학과는 2013년을 마지막으로 신입생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낮은 취업률’, ‘낮은 전공선택률’ 등의 수치를 들어 학교가 학과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개강을 1주일여 앞둔 지난 23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심리학과 학생회실. 새학기를 앞두고 설레는 분위기다.

같은시각, 학과가 폐지돼 2014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못한 중앙대 비교민속학과 학생회실이 썰렁하다.

이 학과 마지막 신입생이었던 13학번 김모(25ㆍ여)씨는 대학에서 ‘학과 후배’를 받아본 경험이 없다. 입학시즌만 되면 동기들과 모여 ‘매일 우리끼리만 보니까 칙칙하다’며 웃지 못할 농담을 주고 받는다. 김씨는 “폐과 이후 새내기 행사에 도와주러 간 적이 있는데 타과생들이 ‘비교민속학과는 없어져서 후배들이 혼란스러워 할 것 같다’고 해 그 이후로는 일체 신입생 관련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학과가 사라지기 전인 2009년엔 50여명 정도의 동문들이 북적대며 MT를 다녀왔다지만, 지난 가을 학과 MT에 참여한 학생은 10명 내외에 불과했다.

같은 과 10학번 정모씨 역시 “3월이 되면 다른 학과 친구들은 새내기 때문에 시끌벅적한데 우리과는 조용하고 늘 사무실 불이 꺼져 있어서 볼 때마다 안타깝다”고 씁쓸해했다.

비교민속학과 졸업생인 윤모(26ㆍ여)씨는 “입학하자마자 과가 없어진다는 얘기가 나왔고 당시 42명이던 동기가 반수(학교 다니면서 하는 재수)나 전과(전공을 옮김)를 하겠다고 나가고 15명 정도만 남았다. 내가 꿈꿨던 대학생활과는 너무 달랐다”며 “과가 없어지니까 더 이상 과에 대한 소속감이나 애정이 없어지는 게 가장 힘들었다. 내 대학생활은 허탈함과 허망함 그 자체였다”고 회상했다.

중앙대에서는 당시 비교민속학과 뿐 아니라 아동복지학과, 가족복지학과, 청소년학과 등도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올해는 건국대 바이오산업공학과가 신설 3년 만에 사실상 폐과 수순을 밟아 논란이 됐고 지난해엔 단국대 생명의료정보학과가 신설된지 2년만에 폐지돼 올해 신입생을 받지 않았다.

폐지보단 낫지만 ‘통폐합’된 학과 학생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국대는 지난해 영화학과와 영상학과를 합쳐 ‘영화애니메이션학과’로 개편했다. ‘정체성이 다르다’는 학생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은 낮은 취업률 등을 이유로 통폐합을 단행했다.

이 대학 영화 작업실에서 만난 학생들은 “통폐합 후 학과 일에 관심 끊었다”며 냉소적인 모습을 보였다. 올해 후배를 처음 받는 2학년 학생이었지만 새학기에 대한 설렘은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과로 입학한 뒤 영화애니메이션학과(연기전공) 소속이 된 2학년 김모씨는 “영상학과와 합쳐지면서 연기전공의 개설 과목 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게 적어지니까 전공자 입장으로선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같은 과 4학년 장모씨는 “15학번의 경우 영화과로 입학했는데 수업이 없어서 못 듣고 뜬금없이 전공 필수과목이 된 드로잉(drawing) 과목을 들어야한다. 연기 배우고 싶어 왔는데 그림 그리라는 것”이라며 “배우는 게 완전히 다른데 이름만 합쳐놓으니 학과 정체성이 사라진 것이 가장 불만스럽다”고 했다.

장씨는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연극영화과는 특히 선후배 간 인맥도 중요한데 영화과가 사라지고 영화애니메이션 학과로 졸업한다는 게 나에겐 큰 상처가 될 것 같다”며 “눈뜨고 코 베인 느낌이다. 학교가 학생들을 돈으로만 보는 것 같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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