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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기자의 일본열전] 일본의 역사인식과 역사왜곡 - ② 한국과 일본이 화해할 수 없는 이유
[헤럴드경제] 아무리 친해도 역사 문제로 갈라서는 것이 한국과 일본입니다. 지난해 12월 28일 합의가 성사된 한일 위안부 합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일부 여론은 “일본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이 명시되지 않았다”며 합의에 반대했지만, 역으로 일본 일부 여론은 “위안부는 군 관여 하에 이뤄진 문제가 아니다”며 합의에 반대했습니다.

미국 스탠포드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이었던 마크 피에티(Mark Peatti) 교수는 “일본은 귀납적인 접근을 통해 ‘전쟁범죄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는 논리를 성립시킨다”며 이는 “전쟁범죄의 무게를 가볍게 보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반면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의 사라 서(Sarah Soh) 인류학 교수는 “식민지배에 대한 한국의 집단적 기억은 지극히 단편적이다. 일제 치하라는 구조적 폭력 속에서도 존재했던 긍정적인 측면들을 모두 부정한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한일 양국 모두 자국중심적인 역사인식 때문에 일제강점기 시절 발생한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배타주의적인 역사 인식 속에서 ‘가해 국가’와 ‘피해 국가’ 간 역사인식의 불일치는 당연한 일이죠. 

[자료=헤럴드경제DB]

역사에 ‘정답’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죄와 피해의 경중에 따라 어떤 책임과 해결책이 필요한지 고찰하기 위해서라고 역사학자 아리프 딜릭(Arif dirlik)은 말합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각자 자국중심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나빴다’거나 ‘일본만 나빴던 것은 아니다’는 논쟁만 반복되고 있습니다.

‘가해’국가인 일본은 제국주의를 ‘당시 자국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탄생하게 된 사상이나 체제’라며 전쟁범죄를 희석시키는 반면, 한국은 ‘반인륜적이고 그릇된 사상이나 체제에 희생당해 피지배국가로 전락했다’며 구한말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정치구조의 폐단에 의해 국가가 붕괴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 합의를 이룬 위안부 문제가 있습니다.

다음은 일본 4년제 대학교 정치학과 학생들이 위안부 문제를 놓고 한국인 학생들에게 던지는 대표 질문들이자, 일본 보수매체들이 주장하는 논리입니다.

#1. “일본도 전쟁의 피해자다. 요시다 독트린이 나오지 않았으면 일본 역시 미국이나 유럽국가의 식민지가 됐을 것이다. 제국주의가 범람한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도 생존하기 위해 제국주의를 택했다. 한국은 일본의 피해국가라고 하지만, 일본은 패전을 이유로 일본 여성들을 미군 위안부에 동원해야 했다. 약자의 위치에서 피해를 입는 것이 국제정치의 실상이다. 한국은 안 그럴 거란 확신이 있는가”

#2. “고노담화문은 증언을 믿고 바로 발표된 것이다. 하지만 요시다 증언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고노담화에서 아베 담화까지 계속 한국에 사과했다. 무엇을 더 사과하고 보상해야 하는 것인가.”

#3. “일본 보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은 왜 베트남 전쟁 당시 동원한 베트남 위안부들에 배상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가. 김대중 정권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과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참전용사들의 명예에 말뚝을 박았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무엇이냐. 심지어 일본은 두 차례가 공식 사과하고 일본여성기금(AWF)을 통해 피해자들을 지원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야’라며 자국중심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니 일본은 윤리의식이 부재합니다. 전시 여성인권 유린 문제를 전시 ‘필요악’으로 여긴 인식 때문에 일본 성접대 문화인 ‘크라브’(クラブ) 문화와 가학적인 성문화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이즈 퇴치 및 치료기금을 모으기 위해 일본 AV 여배우들의 가슴을 만지게 하는 ‘자선‘활동을 펼쳐지는 등 비정상적인 관행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후지메 유키 오카사 외국어대학 대학원 교수는 위안부 문제를 논할 때 “자의든 타의든, 전시 여성을 성노리개로 동원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지극히 반인륜적인 접근이라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위안부 문제를 논할 때 일본만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라 서 교수는 위안부 제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한국 포주들에 의해 위안부가 동원됐다는 점, 가난이라는 반강제적인 환경 속에서 위안부를 지원한 여성이 존재했다는 점,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은 소수에 불과했고 다수는 식민지배에 적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일본에 의한 식민 지배의 폭력성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포주와 조선인 헌병 등 다수의 조선인들도 피해의 역사를 만드는 데에 개입됐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며 “일본이 조선인 스스로를 가해자로 만들어버리는 구조적인 폭력 자체를 ‘잘못’으로 규명해야 일제강점기의 피해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고 주장합니다.

또, 창씨개명을 한 다수의 조선인과 위안부를 지원했다고 진술한 일부 여성들을 고려했을 때 일본을 싸잡아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인 국가’라고 비난하고 일제강점기를 ‘비도덕적인 국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식민지배를 당한 시대’로 규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합니다.

피해의 역사를 다각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겪은 특수한 피해’로 규정하는 역사인식이 내부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거나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세파라딤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가 있습니다.

노르만 핀켈슈타인은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에 대한 비이성적인 민족말살정책이자 절대적으로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건’ 이라는 절대적 교리를 성립해 정략적으로 활용했다”며 “‘홀로코스트’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자기이익을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영토를 얻은 세파라딤 유대인들은 아쉬케나짐 유대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공유하면서도 팔레스타인 민족을 학살해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인 학살 및 성폭력 문제가 거론되고 있지요. 베트남에는 당시 한국군으로부터 입은 피해를 담은 ‘증오비’가 여러군데 설립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마땅한 보상조차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일본인들의 주장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를 표명한 김대중 대통령에 “참전용사들의 명예에 말뚝을 박았다”고 주장했죠. 이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아베 신조(安倍 晋三) 총리는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조상들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주장하는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과 일치합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권력관계가 밀접하게 연계해 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역사는 한 사건을 인식한 역사학자들이 다양한 이해관계와 권력관계, 그리고 숨겨진 뒷 이야기들을 통해 다양한 사건의 얼굴들을 이해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한일이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갈등하지 않기 위해서는 양국이 ‘자기 위주의, 자기의, 자기에 의한’ 해석을 고집하는 자세부터 버려야하지 않을까요?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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