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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이제 이우환 화백이 검증할 차례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지난 18일 ‘경찰이 압수한 이우환 작품 12점 모두 가짜’ 제하의 본지 단독 보도 관련 네티즌 댓글에는 몇가지 흥미로운 것들이 있었다. 경찰 압수수색 대상이었던 인사동 K갤러리 관계자 및 ‘이우환 작품 위작 사건’과 관련이 있는 듯한 인사들이 남긴 댓글들이었다.

내용은 비슷하다. “민간 감정위원들이 위작이라고 결론 낸 작품들을 이우환 화백이 검증하게 하라”였다. 경찰 수사가 장기화되며 미술계 피로감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위작 사건을 종결지을 수 있는 건 생존 작가인 이 화백 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합당한 요구로 들린다.

그런데 한편 아이러니하다. 만약 이 화백마저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그 어느 민간 감정위원보다 막강한 파급력을 가질 것이 분명하고, 이를 근거로 작품을 갖고 있던 갤러리는 물론 관련자들에 대한 법적 조치가 시작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 화백의 감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뭘까. 이 화백이 “내 작품 맞다”라고 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라도 있는 걸까. 

▶경찰은 왜 이 화백에게 문제의 작품을 보여주지 않았을까=최근 기자가 접촉한 3명의 미술계 인사들은 국내 미술계에서 나름의 독보적인 지위를 갖고 있으나 서로에 대해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극명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인사들이었다.

이 중 2명은 경찰이 공식 의뢰한 민간 감정위원단에 참여했고, 1명은 감정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수사 전 작품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3명 모두 압수 작품들에 대해 “가짜”라는 결론을 냈다.

작품을 본 인사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재료의 사용이 이 화백이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서툴렀고, 캔버스를 인위적으로 노후화한 흔적이 역력했고, 나무 액자를 오래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색을 칠했다고. 작품 해체를 비롯한 과학 감정의 모든 절차와 경찰 감정위원단의 안목 감정 과정은 모두 조사관 입회 하에 이뤄졌으며, 영상으로도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정 결과가 공개됐고 수사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상태지만, 경찰이 결과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은 의아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이상한 것은 경찰은 왜 아직까지 이 화백에게 그림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 두고 말들이 많다. 이 화백이 “모두 진품”이라고 해버릴 경우 수사가 무위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경찰이 주저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과, 위작 사건과 관련 이 화백에게도 책임 소지를 가릴 부분이 있는 것 아니냐고 추측하는 쪽이다.

감정에 참여했던 한 인사에 따르면 이번 경찰 수사의 상부 지침이 ‘화가를 다치게 하지 않을 것’과 ‘최종 수사 발표 이전 반드시 화가의 검증을 거칠 것’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화백 역시 법률 대리인을 통해 “현재까지 경찰로부터 공식적인 협조 요청을 받은 적은 없지만 경찰에서 위작품으로 위심되는 작품에 대하여 봐달라는 등의 요청이 오면 성심껏 봐줄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미술계가 제기하는 추측, 혹은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경찰은 언젠가는 이 화백을 불러 문제의 작품들을 검증하는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감정위원은 “이 화백이 반드시 압수 작품들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이 화백이 보더라도 위작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급수’가 현격하게 떨어지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작가 감정을 거쳐 진위 여부를 좀 더 명쾌하게 밝히고, 수사도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 국제갤러리 단색화 전시 당시 이우환 화백.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이우환 작품 위작 사건은 왜 이렇게 커졌을까=“위작품의 최대 피해자는 작가 본인인데 작가가 어떻게 이러한 사태를 만들 수가 있나. 도대체 작가가 어떻게 사태를 만들었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 달라.”

이 화백이 법률 대리인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그는 언론을 통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조국이 나를 죽이려는가”라고도 했다.

그런데 이같은 격앙된 반응은 어딘지 어색하다. 이 화백이 이번 사태의 큰 피해자이긴 하지만, 이는 ‘조국’이 그를 죽이려는 사건이 아니라 그림 위조 사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를 제거하고 작품 값을 떨어뜨려 이득을 보려는 세력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어느 쪽인지 딱히 꼽기도 어렵다. 위작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만 유관자들을 처벌하면 되고, 아무 ‘죄’ 없는 이 화백이 ‘죽을’ 일 같은 건 없다.

미술계에서는 화백의 초기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작가가 이 사태를 만들었다’기보다, 위작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을 당시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지적이다.

익명의 화랑협회 관계자는 이 화백이 프랑스 베르사유 궁 전시를 앞둔 2014년, 갤러리 관계자들과 함께 출국하기 전 이 화백을 급히 공항에서 만났다고 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위작과 위조감정서가 함께 떠돌고 있다며 이 화백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고, 이 화백 역시 이 문제를 다함께 모여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후 모임이 성사되지 않았다. 그는 이 화백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 화백이 “고유의 호흡으로 그려 모방하기 힘들다”거나 “본 작품들 중 위작이 없었다”고 했던 말들이 위조범들에게는 ‘호재’가 된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위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왜 그렇게 강하게 부정했는지 모르겠다”는 것. “위작이 없다는 말이 위조범들에게는 더 만들어 유통시켜도 되겠구나 하는 계기가 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 화백이 세계적인 거장답지 않게 작품 관리에 안일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 화백은 최근에야 “오랜 기간 동안 일본, 한국 및 프랑스에 있는 작업실들을 오가며 작업했기 때문에, 가끔은 작품의 뒷면에 일련번호나 작가 사인이 없는 것도 있고, 일련번호 부여 방식이 바뀐 경우도 있고, 같은 일련번호가 두 번 이상 겹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과거 이 화백 작품 감정을 맡았던 한 감정위원은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기도 했다.

“이 화백에게 ‘새 것’의 느낌이 확연한 작품 한 점을 보여주며 이상하지 않느냐 물었다. 그런데 화백이 ‘액자를 최근에 새로 했네요’라고 하더라. 만약 이 말이 맞다면 새로 맞춘 액자 안쪽에 타카로 고정시킨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었다. 새로 박은 못 자국 뿐이었다. 이 화백이 작품을 잘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한편 최근 미술계 일부에서는 이번 위작 사건을 ‘감정권 싸움’의 프레임으로 해석하는 움직임도 있다. 이에 대한 한 미술계 인사의 지적.

“협회로부터 이우환 감정권을 언제 누가 뺏고 말고 했나. 게다가 감정권은 저작권처럼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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