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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능적 붓질·도발적 제목…자유를 그리다
인디밴드 ‘어어부프로젝트’ 실력파 보컬
가수·화가 전방위 아티스트 백현진
27일까지 PKM갤러리서 개인전
순간의 본능 화폭 가득 실험적으로 옮겨
통통 튀는 음악만큼 개성만점 작품 눈길
“작품구상 안해도 그리다보면 의미담겨”



‘어릴적 논밭 스케이트장 옆 비닐 하우스에서 먹은 오뎅이 생각나는 초여름이라고 말 되어지는 한 순간’.

가로 98.2㎝, 세로 163.3㎝ 짜리 유화 작품의 제목이다. 작가는 백현진(45). 인디밴드 ‘어어부프로젝트’의 보컬리스트로 먼저 대중에 알려진 미술가다. 백현진 작가의 개인전이 PKM갤러리(서울 종로구 심청로)에서 열리고 있다. 

‘어릴적 논밭 스케이트장 옆 비닐 하우스에서 먹은 오뎅이 생각나는 초여름이라고 말 되어지는 한 순간’, 2014-2015, 캔버스에 유채, 163.3×98.2㎝ [사진제공=PKM갤러리]

작품에 붙은 제목들이 작품보다 먼저 도발한다. ‘아방가르드 밴드’, ‘인디계 반칙왕’ 등으로 불리며 개성있는 사운드와 ‘이해 불가’에 가까운 가사를 고집했던 백현진의 그림은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먼저 ‘어릴적 논밭…’에 대한 작가의 설명.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졌을 때 바라봐요. 그림 속 이미지들이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죠. 제 그림의 이미지가 어릴 적 봤던 논밭 스케이트장 옆 비닐하우스의 풍경은 아닐거에요. 그런데 그림을 한참 바라보니 그 때 스케이트 탔던 것과 비닐하우스에서 오뎅(어묵) 먹던 게 생각나는 거예요. 설계도도 계획도 없이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린 건데, 그림을 보니 어린 시절 이미지가 생각난 거죠.”

이어 ‘…스케이트장 옆 비닐 하우스에서 먹은 오뎅이 생각나는 초여름…’에 대한 설명.

“스케이트는 겨울에 타는 건데 초여름과는 부딪히는 계절이잖아요. 그게 동시에 생각난 거죠.”

‘몇 가지 사실들과 추측들과 망상들과 침묵’, 캠퍼스에 유채 등, 180 x 150㎝. [사진제공=PKM갤러리]

그리고 가장 이해하기 힘든 ‘…말 되어지는 한 순간’.

“초여름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저만 해도 6월초를 말하는 건지 7월초인지 헷갈리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초여름이 진짜 초여름과 얼마나 링크되는가 스스로 확신이 안 서기 때문에 ‘말 되어지는’이라는 표현을 쓴 겁니다.”

백현진은 ‘(무엇 무엇이) 되어지는’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바른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뉘앙스 이상으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그가 무언가 ‘되어지는’이라고 표현할 땐 대게 ‘통상적으로 정의되는, 관습적으로 규정되는’의 의미라고 보면 된다.

백현진은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을 정의했지만, 정의를 강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무언가를 정의하며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념이나 정의보다 순간의 본능과 행위에 충실하다. 작품 ‘눈보라’에 대한 설명이 이를 말해준다. 

“남녀가 포옹하고 있는 그림이에요. 그런데 연애도 그렇고 눈보라도 그렇고, 사람들은 패턴을 찾고 싶어하지만 패턴이란 게 없어요. 눈(雪)을 오래 지켜 본 사람들은 알 거에요. 그 ‘패턴’이 얼마나 무질서한지.”

백현진 작가. 매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작가의 즉흥적인 사운드 퍼포먼스 ‘면벽’이 펼쳐진다.

전시장 2층 유리창에 붙은 작품 ‘귀여워 죽을때까지’는 관객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연필로 쓱 그어놓은 장난같은 ‘개’ 그림이다. 그러나 그의 ‘난해한’ 작품과 ‘더 난해한’ 작품 제목 때문에 힘들어하진 말자. 그건 ‘사람나고 예술났지, 예술나고 사람났냐’고 강조하는 작가가 의도한 바는 아니니까.

“저는 뭘 그려야겠다고 계획하지 않아요. 다만 작품은 우리들의 삶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뭔가 계획하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살아지는 삶 말이에요.”

전시는 2월 27일까지.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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