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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성냥팔이 소녀가 필요해진 이유 - 김다은 추계예술대 교수
안데르센의 동화 중에 ‘성냥팔이 소녀’가 있다. 성냥팔이 소녀는 추운 겨울에 굶주린 채 눈 위를 맨발로 걸어 다니며 성냥을 판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성냥을 한 갑도 팔지 못하자, 너무나도 추운 나머지 성냥을 태워 자신의 몸을 따뜻하게 만든다. 성냥들은 금세 꺼지고 만다. 그녀는 결국 하늘나라로 올라가서 앞서 죽은 할머니와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다음 날 추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자, 사람들은 소녀가 미소를 지닌 채 죽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성냥을 파는 소녀의 직업이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픽션인 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으나, 성냥팔이 소녀는 유럽에서 실제 볼 수 있는 현실 속의 사람이다. 필자는 얼마 전 폴란드를 여행하면서 말 그대로 성냥팔이 처녀(!)를 만날 수 있었다. 가판대 위의 가득 쌓인 성냥갑들은 폴란드 출신의 전 교황 요한바오르 2세의 얼굴에서부터 수많은 누드모델들의 아름다운 몸으로 장식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동화 속의 인물을 만난 신선함과 성냥갑들의 다양한 디자인에 반해, 한 보따리의 성냥을 사고 말았다.

한데, 며칠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4년 10월부터 2015년 9월까지 ‘2015 국민 독서실태 조사’의 결과를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성인 1인 연평균 독서량은 9.1권이었고, 3명 중 1명은 1년에 아예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인의 빈약한 독서량이 무엇 때문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아름다운 한 장면이 떠올랐다. 폴란드의 숙소에서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성냥을 그어 일으킨 작은 불꽃을 촛대 위의 초에 옮겨 붙이는 섬세한 동작이 창문을 통해 보였던 것이다. 여인은 온전한 밤이 되어 전등을 밝히기 전까지 그 촛불 아래에서 오랫동안 책을 읽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발표를 보면, 그동안 전문가들이 알려준 수많은 독서 권장법이 별로 소용이 없었던 듯하다. 한국에도 성냥팔이 소녀가 생겨나면 어떨까하는 엉뚱한 생각이 그래서 들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정서적 환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우리의 삶속에도 성냥의 정서가 필요한 것이다. 성냥의 불꽃처럼 조용하게 자신의 영혼에 집중하는 시간 말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속의 소녀가 성냥을 하나씩 그을 때마다 보이던 환상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첫 번째 성냥에서는 큰 불빛이 보였고, 두 번째 성냥에서는 푸짐한 음식이 차려진 식탁이 보였고, 세 번째 성냥에서는 멋진 크리스마스 불빛으로 할머니가 보였다. 성냥의 불꽃은 소녀가 꿈꾸는 것들을 차례로 보여주고 사그라져 갔다. 이제 우리는 책을 통해 우리가 꿈꾸는 삶의 지혜와 환상을 볼 차례이다.

동화 속에서 사람들은 소녀가 죽은 후에야 성냥을 하나도 사주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된다. 혹여 우리도 영혼이 죽은 다음에야 책을 한 권도 사서 읽지 않았다고 깨닫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사상가인 모티어 아들러가 말하길, “모든 책은 빛이다. 다만 그 밝기는 읽는 사람이 발견하는 만큼 밝아진다.” 우리의 영혼이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에 잠기기 전에, 우리 앞에도 촛대를 옮겨 놓도록 하자. 아, 아름다운 책의 빛으로 우리의 영혼을 밝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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