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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官주도‘전작도록 제작’추진…미술계‘부글부글’
문체부‘ 이중섭·박수근 전작도록’논란
혈세투입 전작도록, 작가 선정 베일
작가별 연구팀 구성원 전문성 결여
특정 메이저화랑 2~3곳 자료 의존
미술계 ‘전문중개사 제도’ 대안 제시


‘문화융성의 가치 확산’을 내 건 현 정부의 문화정책은 제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이우환 위작사건’으로 국내 미술계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ㆍ이하 문체부)가 이중섭, 박수근의 전작도록(카탈로그레조네)을 제작한다고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전작도록이란 특정 작가의 모든 작품에 대한 연대, 크기, 상태, 이력, 소장처 변동, 비평, 전시 기록 등을 총망라한 자료로, 한 작가에 대한 전체 기록임과 동시에 작품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자료로 활용된다.

위작 시비가 일 때마다 전작도록의 필요성이 대두되긴 했지만, 과연 이것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관이 주도할 정책적 프로젝트인가에 대한 논란이다.

그런가하면 미술계 한쪽에서는 부동산 공인 중개사처럼 미술품과 문화재도 전문 중개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최근 감정서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난 이우환 작가 작품. 진위 여부는 경찰 수사 중에 있지만 아직까지 수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다.

▶‘문체부 추진’전작도록 사업 들여다보니…= 현재 정부는 이중섭, 박수근 두 작고 작가에 대한 전작도록 제작을 추진 중이다. 문체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가 주관해 지난해 6월 미술계 전문가 5인으로 사업 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여기서 2명의 작가가 선정됐다. 추진위원회에는 미술평론가 오광수(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씨를 위원장으로, 김이순 홍익대 교수, 김복기 경기대 교수, 강승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최태만 국민대 교수가 포함됐다. 각 작가별로는 연구팀을 만들었다. 이중섭연구팀은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와 제주도립이중섭미술관이 컨소시엄 형태로, 미술사학자 목수현 씨를 책임연구원하는 연구팀을 꾸렸다. 연구원 5명(최열, 전은자, 김유정, 김미정, 신수경)과 연구보조원 2명(이은주, 김명훈)으로 구성됐다. 박수근 연구팀은 한국미술품감정협회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이 컨소시엄을 이뤘다. 미술평론가 서성록(안동대학교 교수) 씨를 책임연구원으로, 연구원 3명(최정주, 엄선미, 김인아)과 연구보조원 2명(이명선, 정경원)이 연구팀에 포함됐다.

문체부에 따르면 3년에 걸쳐 데이터를 리서치하고 수집한 뒤 전작도록이 만들어지면 디지털 출판 형식으로 온라인에 먼저 띄우고, 이 과정에서 여론의 검증을 받아 오류를 수정한 후 인쇄물로 출판될 예정이다. 디지털 버전에는 진위 논란이 있는 작품도 ‘진위 논란 있음’이라는 표기 하에 함께 게재될 예정이다. 저작권과 출판권은 정부(예경)가 갖는다. 연구팀은 작품의 진위 여부를 ‘검증’하는 작업보다 데이터 리서치 기능에 방점을 둔다는 방침이다. 문체부는 도록의 오류 검증을 위해서는 향후 5명의 인원으로 별도의 ‘검수위원회’를 만들 예정이다.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고 있다.

▶“전작도록 필요하지만 추진 과정이 문제…관 아닌 민간에 맡겨야”=“전작도록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는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데 국가가 직접 나서서 전작도록을 만든다는 건 문제가 있다. 민간에서 주도하도록 장려하고 국가는 지원하고 관리ㆍ감시하는 역할만 해야 한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사비나미술관 관장)은 정부가 저작권과 출판권을 갖고 전작도록을 직접 추진하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이유가 있다.

첫째, 전작도록 추진 과정에서의 문제다.

정부 주도 전작도록 제작에 대한 사전 공청회 등 여론 수렴 절차 없이 진행됐다는 것. “훌륭한 작가인 것은 맞지만 과연 정부가 나서서 전작도록을 만들어줘야 하는 작가인가 하는 것은 보는 사람마다 주관적인 평가가 다를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정부는 원로 작가인 박서보, 이승택, 최만린의 디지털 자료집도 제작할 예정인데, 이 관장은 작가 선정 과정에서 좀 더 범미술계의 여론을 수렴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둘째, 전작도록의 오류 가능성이다.

현재 작가별 연구팀 구성원은 미술평론가나 미술사학자, 큐레이터들로 꾸려졌다. 이 관장은 “전작도록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진품’ 여부를 선별해낼 만큼 수십년간 특정 작가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전작도록이 만들어지면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은 진품이라는 ‘공인’을 얻게 되는데, 최고의 스페셜리스트가 뛰어들어도 오류가 있는 진위 감정 분야를 미술사를 연구하는 학자나 특정 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주도하면 향후 도록의 신뢰성을 보장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밖에도 그동안 이중섭, 박수근 작품을 주로 취급해 온 국내 메이저 화랑 2~3곳의 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점도 연구팀의 ‘아킬레스 건’으로 꼽았다.

▶“전작도록도 결국 사람이 보는 것…전문 중개사 제도 도입해야”=“미술품ㆍ문화재 거래 공인 중개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들을 통해 거래한 미술품은 부동산 매물 정보처럼 전체적으로 공유해서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다. 미술품 위작을 완전히 막을 순 없지만 적어도 유통 과정이 투명한 미술품들을 선별해 낼 수는 있다. 횡단보도로 건너자는 얘기다. 그럼 교통사고 나도 보상받을 수 있는 근거가 생기지 않나.”

미술평론가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씨 역시 전작도록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국가가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만약 국가가 만든 전작도록을 믿고 작품을 샀는데 위작으로 판명났을 경우에는 그 책임을 국가가 져야한다는 게 이유다.

정 씨는 전작도록만 만들면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정부 정책을 경계했다. 그는 “미술 분야는 정량평가 보다는 정성평가가 더 중요하다”면서 “전작도록 또한 사람이 보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를 볼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미술 분야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한 자, 실무경험을 갖춘 자, 세무 등 관련 법 조항에 대한 전문 지식을 평가하는 국가자격시험을 통과한 자 등 일정 기준에 부합하는 전문가들을 공인 중개사로 육성하고, 이들을 통해 미술품을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문체부 뿐만이 아닌 범정부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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