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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운명론 활용법
세상이 하 수상하다. 글로벌 금융 위기에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개성공단 폐쇄... 온통 흉흉한 일 투성이다. 잘 팔리는 건 복권뿐이고 횡행하는 건 운명론이다. 운명론의 근원은 동양에선 주역이다. 이른바 사주다. 팔자라고 하면 더 가슴에 확 와닿는다. 흙수저나 5포세대라는 말은 좌절의 운명론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타고나길 그랬다고 믿고 마는 일이다. 거기서 머문다면 운명론은 패배자의 철학이 되고 만다. 세상을 한탄하며 들어서는 은둔의 도피처일 뿐이다. 하지만 운명론이나 사주팔자가 새로운 시작의 디딤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여기 그런대로 탄탄한 중소기업의 CEO자리를 놓고 다투던 한 중년남자가 있다. 그는 최고경영자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업무성과는 늘 좋았고 따르는 후배들도 많다. 수많은 경쟁을 뚫고 고난을 이기며 최후의 경쟁자 두 사람중 한사람으로 남았다. 자그마치 30년이 걸렸다. 이제 길고 긴 레이스를 마무리 할 고비에 왔다. 그는 마지막 경쟁에 ‘배수의 진’을 쳤다. 모든 것을 다 걸었다. 그만큼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회사의 선택은 다른 경쟁자였다. 목표는 날아갔다. 허탈했다. 이제 그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 남아서 차기를 보는 건 쉽지 않다. 새 CEO는 자신의 체제로 경영할 것이다. 새 CEO와 후배들에게 부담만 주고 모양은 추해질 뿐이다. 

이제 뭔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직 힘이 펄펄한 나이다.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다. 그런데 출발점에 설 수가 없다.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생각이 너무 많다. 무엇이 부족해서 탈락했단 말인가. 새 CEO가 더 나은게 무엇인가? 노력? 실력? 모든 점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경쟁이었다. 졌다는 걸 인정할 수 없다. 울화가 치민다. 그러니 새 출발이 안될 수 밖에.

해답은 묘한데서 나왔다. 후회가 살 길을 만들어줬다. 그동안 너무 목표만 보고 내달렸다. CEO가 못되면 세상이 끝날 것 처럼 살았다. 목표에 매몰된 삶이었다. 애초에 ‘배수의 진’부터 잘못됐다. 그건 차마 못할 작전이다. 지면 모든게 끝장 난다. 다음이 없다. 역전은 불가능하다. 세상에 이긴다고 보장된 전쟁은 없다. 플랜B 플랜C 없는 건 작전도 아니다. 인생에 한번으로 끝나는 경쟁이 어디있나.

그는 팔자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삽시간에 많은 문제가 해결됐다. 노력이 부족해서 진 게 아니다. 거기 오기까지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실력은 그야말로 종이 한장 차이다. 최선을 다 한 후의 결과가 받아들여졌다. 자기 합리화가 가능해졌다. 열심히 노력한 자신을 쓰다듬을 수 있게 됐다.

납득이 됐다. 이제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운명은 기회라기 보다는 선택의 문제다. 해석의 문제, 활용의 문제다.

운명이 그에게 묻는다.

“집에 호랑이 그려진 그림 있어?” “없는데요. ”

“그게 있었으면 CEO 됐을텐데.”

운명이 똑같이 새 CEO에게 묻는다.

“집에 호랑이 그려진 그림 있어? ” “없는데요.”

“그게 있었으면 CEO 못될 뻔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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