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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사건’ 최연숙씨 41년만에 무죄 확정
대법 “고문 수사로 인한 자백은 증거능력 없다”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1975년 ‘재일 한국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5년 징역형을 살았던 재일교포 최연숙(65)씨에게 41년 만에 무죄가 확정됐다. 법원은 당시 간첩단 사건이 고문수사로 인한 것으로 증거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권순일)는 국가보안법ㆍ반공법 위반과 간첩활동 등으로 기소돼 실형을 살았던 최씨가 2012년 6월 재심 신청을 한데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2일 밝혔다.

대법원 전경.

최씨는 와세다대학 1학년 재학 때인 1971년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일본본부 산하단체인 한국학생동맹 도쿄지부에 가입해 공산주의 사상교육을 받고, 공산주의 신봉자가 돼 본격적인 반국가단체 이익을 위해 활동했다고 1976년 재판부는 판단했다. 특히 1975년 3월 한국으로 넘어와 북한 지령을 받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상 교육과 선전선동 활동을 벌이는 등 간첩활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됐다.

최씨는 “좋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해 여러 사람들을 만난 것 뿐”이라며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하거나 간첩활동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76년 12월 당시 법원은 최씨에 대해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5년, 몰수(트랜지스터라디오, 노트 1권, 일기장 1권) 등의 판결을 확정했다.

최씨는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이 ‘고문에 의한 조작사건’으로 결론 짓자, 2012년 6월 재심을 청구했다. 그는 “1975년 10월18일 영장 없이 임의동행 형식으로 체포돼 11월1일까지 불법 구금돼 가혹행위를 당했다”며 “구금기간 동안 작성된 진술서 및 피의자신문조서는 증거로 인정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법원은 “중앙정보부 수사관에 의해 연행 당시 구속영장 없이 끌려가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고, 수사관들은 최씨에게 자백을 강요하면서 뺨을 때리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으로 강압적인 수사를 했던 사실이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최씨의 진술은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 등으로 인해 이뤄진 것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국가보안법위반죄를 적용하는 것도 무리라고 봤다. 법원은 “당시 여러 참고인 진술조서 등을 보면 최씨가 당시 군인 신분이던 자들과 만나 ROTC 제도를 소개하고, 현 시국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에 불과하다”며 “죄를 증명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당시 재판부가 공소사실에 ‘국가기밀’로 기재한 내용이 이미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공지의 사실에 불과하다”며 “이를 누설한 것이 국가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기밀로 보호해야할 것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40년 전 법원이 “그 사실이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상식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반국가 단체에게 유리한 자료가 될 경우 국가기밀에 속한다”고 판시한 것과 입장을 달리한 것이다.

최씨가 당시 가입했던 한민통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 것도 재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민통은 반국가단체로 규정됐으며,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판결 때도 김 전 대통령이 한민통을 결성했다는 이유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한편, 최근 1970대와 1980년대 재일교포 유학생으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간첩으로 몰려 복역한 재일 교포들의 무죄 확정이 잇따라 선고되고 있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최씨와 같은 혐의로 4년7개월 복역한 재일교포 이동석(64)씨에게 무죄확정 판결을 내렸다. 같은해 8월엔 역시 같은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와세다대 객원교수 강종헌(65)씨가 38년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안병욱 카톨릭대 명예교수(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는 “유신시대 간첩 검거가 공안기관들의 최고의 업적이었을 때 자기방어력이 부족한 재일교포 유학생을 마녀사냥의 대표적인 표적으로 삼았다”며 “불법감금, 무자비한 고문, 주위 지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협박을 통한 증거조작 등을 통해 간첩사건을 조작해 낸 것이 드러난 사례”라고 밝혔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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