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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왕 정진영> 차가운 어둠 저편 새 봄으로 안내하는 등불 ‘풍년화’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입춘에 장독 깨진다”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속담을 들어보셨나요? 이 같은 속담은 ‘봄의 시작’이란 뜻을 가진 절기의 이름을 무색하게 만드는 입춘 무렵의 강추위에서 비롯됐습니다. 겨우내 건강을 잘 유지하다가 입춘 무렵에 감기를 앓는 분들이 적지 않은 걸 보면, 옛말이 틀리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올해 입춘은 모처럼 이름값을 했습니다. 입춘이었던 지난 4일, 전국은 대체로 맑고 포근한 날씨를 보였습니다. 입춘이 오기 전에 절정에 달했던 한파가 때마침 누그러져, 낮 기온이 초봄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상승했습니다.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수목원에서 촬영한 풍년화. 태안=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옛사람들은 “삼한사온(三寒四溫)이면 풍년, 이상난동(異常暖冬)이면 흉년”이라며 겨울 추위로 이듬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죠. 비록 입춘 한파는 없었지만, 그보다 더한 한파가 입춘 직전에 맹위를 떨쳤으니 올해 농사는 풍년이길 기대해 봅니다.

저 멀리 남도에선 벌써부터 풍년을 예고하는 소식들이 속속 들리더군요. 봄이 오기 전에 마른 껍질을 뚫고 가지 겨드랑이마다 가늘고 길게 갈래진 노란 꽃잎을 가득 피워내는 꽃, 바로 풍년화입니다.

풍년화는 무채색의 계절에 가장 반가운 손님 중 하나입니다. “풍년화가 만개하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듯이, 풍년화는 겨울에 내리는 눈과 더불어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짐작하는 지표로도 꼽히거든요. 눈은 마치 이불처럼 땅을 덮어 밀, 보리 등 겨울을 나는 작물들의 냉해를 막아줍니다. 또한 눈은 강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에 경사진 언덕에도 수북하게 쌓이죠. 겨울의 끝에서 서서히 녹아 골고루 땅으로 스며드는 눈은 봄 가뭄을 견디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겨우내 마른 땅에 물이 풍부하다면 그만큼 가지에 꽃잎이 풍성하게 매달릴 테니, 풍년화로 풍흉을 점치는 것도 과히 틀린 방법은 아닌 듯합니다.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수목원에서 촬영한 풍년화. 태안=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사실 풍년화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풍년화는 일본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지난 1923년 서울임업시험장에 처음 시집을 왔다고 합니다. 언어와 문화권이 다르면 같은 꽃이어도 다르게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에서도 풍년화를 ‘풍작’을 의미하는 ‘만사쿠(まんさく)’로 부른다는군요. 농경문화권인 양국 사람들이 풍년화를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가지를 가득 채운 노란 꽃잎을 바라보면 절로 풍년이 들 것 같은 예감이 드니 말입니다. 또한 풍년화의 수피(樹皮)와 잎에서 추출한 성분은 천연 항균 재료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죠. 풍년화보다 위치하젤(Witch Hazel)이라고 부르면 조금 익숙하실는지요. 물티슈나 화장품에서 이 이름을 보신 기억이 있을 겁니다.

올해 입춘은 설 명절과 붙어 있어서 더욱 따뜻했습니다. 이에 발맞춰 풍년화 개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걸 보니 이제 봄이 오긴 오려나 봅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죠? 풍년화의 노란 꽃잎을 작은 횃불로 삼아 함께 남은 겨울을 건너가보죠. 다가올 봄은 모두에게 따뜻하고 밝기를.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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