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세상읽기-정재욱]일자리도 없는데 쪽박은 왜 깨나
“MICE업계 전체가 위기에 몰렸다. 법에도 없는 사후정산을 요구하는 정부 기관의 잘못된 관행 때문이다. 서비스산업은 한번 신뢰를 잃으면 미래비전마저 흔들리게 된다. 기업을 춤추게는 못할 망정 발목은 잡지 말아야 한다.”


새해 벽두부터 경제가 어렵다고 야단이다. 왜 그런지는 굳이 설명할 것도 없다.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0% 가까이 떨어진 1월 수출 실적이 다 말해주고 있다. 경제가 힘들다는 건 그만큼 일자리 만들기가 어렵다는 소리다. ‘양질의 일자리’ 늘리기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아마 속이 새까맣게 타고 있을 것이다. 이럴 땐 어떻게든 기업을 춤추게 해야 하는데…, 생각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경기 전망이 불투명한데 선뜻 투자를 늘리겠다는 기업은 없다.

그렇다면 있는 기업이라도 열심히 일하게 해줘야 한다. 특히 근로자 고용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중소기업들은 더 챙겨주고 다독여야 한다. 그게 그나마 있는 일자리라도 지키는 길이다. 그런데 기업 현장의 사정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춤은 고사하고 의욕을 꺾는 일들이 적지않다는 것이다.

최근 경찰이 30여명의 MICE 업계 관계자를 무더기 형사 입건한 사건이 딱 그런 경우다. 이들은 정부기관 국제행사를 대행하면서 국고보조금 100억원을 편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경찰의 주장대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을 적용해 마땅하다.

하지만 업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정은 180도 달라진다. 한마디로 경찰이 총액을 확정해 체결하는 행정조달 계약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가령 정부 기관과 업체가 1억원에 행사 대행계약을 체결했다고 하자. 그러면 행사 비용이 1억원을 넘더라도 추가 비용을 요구할 수 없으며, 그 반대일 경우 해당 금액을 차감할 수 없도록 계약을 하게 된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은 기본적으로 사후정산 의무가 없다. 기획재정부와 조달청, 행정안전부 등 관련 부처의 해석도 그렇다.

그런데도 일이 이렇게 된 건 일부 발주 정부기관들이 관행적으로 법에서 금하는 사후원가 정산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감사 대상도 아닌데 대비해야 한다며 하지 않아도 될 요구를 하는 것이다. ‘갑’ 입장의 발주기관이 요구하면 ‘을’인 대행업체들이 거부하기가 쉽지않다. 혹여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압박감에 형식적으로라도 정산자료를 만들어 주게 된다. 그 자료들이 빌미가 된 것이다. 결국 정부기관의 잘못된 관행 하나가 기업, 나아가 업계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 꼴이 되고 만 셈이다.

MICE는 대표적 미래 성장산업이다. 관광산업 고부가가치화 방안의 하나로 정부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다. 물론 관련 일자리도 빠르게 늘고 있으며, 창의력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창업도 활발해 어느 분야보다 활기가 넘친다. 각 지자체는 일자리 수요가 많은 관련 산업 유치에 부쩍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 이번에 일격을 맞았다. 잘 잘못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아무 문제 없으리라 확신하고 있다. 실제 그럴만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미래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이들로선 맥이 빠질이 노릇이다. 서비스산업은 한번 신뢰를 잃으면 자칫 미래비전마저 흔들리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일자리 하나가 아쉬운 판이다. 일자리 만드는 데 도움은 못줄 망정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