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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조범자]최경주와 태극기
"태극기를 신발과 골프백에 새겨 넣고 다녀 외국 선수들에게 “너는 나라에서 스폰서해주냐”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태극마크에 집착했다. PGA 투어 상금으로만 300억원을 넘게 벌었지만, 그의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오직 태극마크였다."


나이 많은 선수에게 은퇴 시기를 묻는 질문은 늘 조심스럽다. “팀이(또는 팬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까지” 등의 원론적인 답을 하는 선수가 대부분. 몇몇 선수들은 기분 나쁜 표정이 역력하다.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낸 스타플레이어일수록 더하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같은 질문을 프로골퍼 최경주에게 했다. “아유, 백스윙할 힘만 있으면 계속 해야죠~.” 순간 와- 하는 웃음이 터진다. 최경주의 입담은 언제나 유쾌하다. “누가 압니까. 소 뒷걸음치다 쥐 잡듯이 메이저대회서 우승할지” 라든가, 준우승 징크스를 언급하자 “방귀가 잦으면 X이 나오기 마련이죠”라고 답하는 식이다. 스스로 ‘완도 촌놈’이라고 말하는 그의 화법은 남도 사투리까지 더해져 걸쭉하고 투박하게 느껴진다. 일부러 꾸미지 않는 진솔함 때문인지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쏙쏙 꽂힌다. 대단한 달변가다.

그런 그가 수십년간 웃음기 쏙 빼고 강조해온 게 있다. 바로 ‘태극마크’다. 1988년 전남 완도수산고에 입학한 최경주는 ‘역도해본 사람 나와라’는 소리에 나갔다가 줄을 잘못 서 골프부원이 됐다. 역도 선수였던 중학교 때부터 그의 꿈은 오로지 국가대표였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에 나가는 게 소원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 남자골프의 진정한 국가대표는 최경주다.

2000년 한국 남자선수 중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데뷔했고 이후 8승을 거두며 한국, 아니 아시아 대표 선수로 입지를 굳혔다. 최경주를 빼놓고는 한국 남자골프를 말할 수 없다. 태극기를 신발과 골프백에 새겨 넣고 다녀 외국 선수들에게 “너는 나라에서 스폰서해주냐”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태극마크에 집착했다. PGA 투어 상금으로만 300억원을 넘게 벌었지만, 그의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오직 태극마크였다.

최경주는 얼마 전 박세리와 함께 리우올림픽 대표팀 감독에 선임됐다. “군기반장으로라도 올림픽에 가고 싶다”던 그였지만, 사실 선수로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오랜 부진으로 세계랭킹이 300위권 밖으로 밀려난 선배가 공연한 욕심을 부리는 것같아 말을 아꼈을 뿐이다.

최경주가 2일 끝난 PGA 투어 파머스 인슈어런스오픈에서 챔피언에 1타 뒤진 2위에 올랐다. 4년 8개월 만의 우승에 딱 한 걸음 모자랐다. 아쉽고 허망했을 터다. 하지만 덕분에 랭킹이 137위로 껑충 뛰어올라 한국 선수 중 네 번째에 자리했다. 이 상승세를 이어가 한국 선수 중 2위(7월 10일 기준) 안에 든다면 그토록 바라던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

최경주는 호적상 1970년생이지만 실제로는 두 살이 더 많아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아홉이다. “오랫동안 꿈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 버린다”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 내 꿈은 뭐였더라, 나는 지금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마흔아홉의 나이에 꿈을 닮아가는 최경주의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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