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롯데임원들 설선물 배송 따라가보니…그 속은 ‘체험, 삶의 현장’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이상했다. 분명 한 일이 없는데도 끝나고 나니 몸이 노곤했다. 나를 반길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을 직접 만난다는 부담감 때문이리라. 물건을 들고 직접 이를 전달해야 하는 배송원이라면 그 부담이 더 컸을거다. 롯데백화점 임원들이 직접 설 선물을 배송한다는 ‘임원 배송’ 현장을 따라가봤다.

지난 28일 오후 2시께 롯데백화점 식품부문장인 남기대 상무를 잠실점에서 만났다. 간단한 인사를 뒤로 하고 우선 갈 길이 바쁘니 서둘러 차에 올랐다.

남 상무는 한 손에 하늘색 매뉴얼 파일을 들고 있었다. 파일 속에는 고객 집 벨을 누를 때 해야 할 말부터 마무리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다 담겨있었다. 남 상무는 “교육도 받았고, 지난번 추석 때에도 임원 배송을 해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첫 집은 경비실에 맡겨달라고 말을 해놨다. 집에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으니 더 편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것도 녹록지 않았다. 여러 아파트가 공동경비실을 쓰는 곳이다 보니 경비실을 찾는 것도 일이었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경비실을 찾아 들어가면서 남 상무는 조용한 목소리로 “요즘은 경비실에서 물건을 받아주지 않는 일도 많기 때문에 상품을 맡아주실 수 있는지 확실히 여쭤봐야 한다”며 ‘노하우’를 전했다. 특히 육류나 생선 등 신선식품은 변질되기라도 하면 이를 맡아놨던 경비실에서도 곤란한 입장이 되기 때문에 잘 안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흔쾌히 물건을 맡아주겠다는 경비실에 상품을 맡기고, 두번째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두 번째 집은 이날 배송한 상품 중 가장 무거운 과일세트였다. 부모님 대신 집을 지키던 어린 고객에게 과일 상자를 맡기자니 어색했다. 남 상무는 집안 한 켠에 상자를 놓아두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세번째 집은 갈비세트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OOO고객님 댁이죠? 롯데백화점에서 설 선물 배송 왔습니다” 매뉴얼대로 진행된 남 상무의 말에 문이 열렸다. 두 걸음 뒤로 물러서 대기하던 남 상무는 명함을 나이 지긋하신 여성 고객에게 건네고, 자신을 소개한 후 상품을 전달했다.

임원들은 보통 10집 정도 명절 배송을 한다. 이원준 대표가 내세운 ‘정도경영, 현장경영’의 일환으로, 임원들이 직접 배송을 하면서 고객들을 만나보라는 취지에서다. 배송원이 고객을 만나는 시간이라봐야 1분 남짓일 텐데, 얼마나 고객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분명 임원은 전체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등 더 ‘중요한 일’이 많을 텐데….

남 상무는 “짧지만 백화점의 인상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며 “고객의 소리뿐 아니라 전체적인 현장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원 배송을 해보면서 엘리베이터 없이 배송하는 아르바이트생들 입장을 알게 됐다”며 “엘리베이터 없거나 먼 지역을 많이 다니는 배송원들에게는 짐을 줄여주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3명이 시험삼아 해봤던 임원 배송이 좋은 반응을 얻어, 올해는 59명으로 그 범위를 늘린 배경이기도 하다.

반 나절 정도 할애한 배송이 끝나자 ‘영혼이 털린’ 기분이었다. 분명 기자는 짐 한 번 들지 않고 옆에서 구경만 했는데도 피로도가 상당했다. “피곤한 일까지 해야 하고, 임원도 하기 힘드시죠” 농반으로 건넨 인사에 남 상무는 “더 힘든 일도 상관없으니 계속 시켜만 준다면 좋습니다”며 농으로 답했다.

명절은 유통업계에서 가장 큰 대목이다. 백화점에서는 배송까지도 ‘백화점의 얼굴’이라고 강조하며 고품격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롯데가 ‘프리미엄 배송 서비스’를 내세우며 임원들을 배송원으로 내보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날 본 임원 배송은 분명 프리미엄 배송 서비스의 현장이지만 그 속에는 ‘체험, 삶의 현장’이 녹아있었다. 물 위에서 우아한 백조가 물 속에서는 쉴새 없이 발을 구르는 것처럼.

kate01@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