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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앤스토리]아동복지의 대부 김대열 32년 ‘홀트 인생’
홀트아동복지회 신입사원서 회장까지 ‘역사의 산증인’…입양·장애아동 복지사업 중심 추진, 해외협력사업도 역점… “봉사는 국민의 5대 의무


”40여년전, 당시 20세 청년 김대열에게도 어려웠던 집안 형편은 숙명이었다. 어서 돈을 벌어 대학에 진학한 큰형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김대열.

하사관으로서 4년8개월 군생활을 끝내고 그가 일한 곳은 바로 대구 동산병원 정신과. 이곳에서 의사를 돕는 치료사로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은 김대열은 자신의 앞길을 어떻게 열어갈지 뚜렷하게 꿈꾸게 됐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입양전문 기관이다. 설령 홀트가 없어질지언정 김대열 홀트 회장은 입양없는 나라를 꿈꿀지도 모른다. 부모 품에 자라야만 하는 아이,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행복한 가정을 빨리 찾아줘야 하는 게 최상의 복지라고 생각하는 김대열. 때로는 그의 입양선택이 아이의 남은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에, 잠못들기도 했다. 1955년생 홀트와 동갑내기 김 회장은 오늘도 가족해체를 막느라 이리저리 뛰고 있다.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가장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도울 수 있는 복지사로 살겠다고 마음 먹은 청년은 그 길로 뜻을 펼치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낮에는 치료사로, 저녁에는 야간대학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 살아가는 ‘주경야독’ 생활이 그를 맞았다.

스물일곱살 늦깎이 신입생으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꿈을 키워가던 청년 김대열에게 홀트아동복지회와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았다. 서른살, 졸업예정자로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 김대열은 복지회가 신입사원을 공개채용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랬던 청년 김대열은 이제 머리가 희끗한 장년이 됐다.

홀트와 함께한 32년=1984년 복지회 입사 후 올해까지 32년간 홀트아동복지회와 동고동락한 장년 김대열.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회장 자리에 오른 그는 홀트 61년 역사의 산 증인이다.

김대열 홀트아동복지회 회장은 “홀트아동복지회와 나는 1955년생 동갑내기 친구”라며 “그런만큼 영원한 벗의 명성에 생채기를 내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며 지내왔다. 술이나 담배도 전혀 하지 않고 일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항상 반성했고, 심지어 회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혹시나 생길 수 있는 유혹을 피하기 위해 법인카드도 아예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만난 김 회장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바로 ‘The early, the better’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복지 정책은 튼튼하고 행복한 가정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찾아 연결해주는 것이다. 그는 “홀트아동복지회의 설립 취지와 활동을 가장 잘 함축하는 말인만큼 입버릇처럼 되뇌이며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1955년 설립자인 해리 홀트가 한국인 고아 8명을 입양한 것에서 시작한 홀트아동복지회. 지난해 창립 60주년을 계기로 영역 확장에 나서고 있지만 단체의 설립 취지인 입양사업과 장애인 아동 복지사업이 항상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김 회장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그는 “입양전문기관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 홀트아동복지회지만 현재 전체 사업의 6분의 1만이 입양 관련 사업”이라며 “하지만, 입양 사업이 없는 홀트는 상상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가정을 만들어주는 활동을 더 활발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선의 복지 ‘행복한 가정’=홀트아동복지회는 지난해 190명을 국내에, 122명을 해외 가정에 각각 입양보냈다.

국내 최고의 입양 전문가로 손꼽히는 그에게도 최근 고민이 하나 있다. 급증하는 미혼모 아이들을 보다 원활하게 입양시켜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는 것.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법률 하나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김 회장은 강조했다. 그가 말한 법은 바로 지난 2012년 8월 개정된 입양특례법. 입양아가 성장한 뒤 친생부모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남에게 입양을 시키고 싶어하는 미혼모들이 반드시 본인의 호적에 먼저 아기를 입적시키도록 한 것이다.

김 회장은 “(미혼모들이) 출생신고 기록이 취업이나 결혼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해 정식 입양을 꺼리고, 베이비박스에 버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복지는 입양을 통해서라도 가정을 만들어주는 것이란 말을 실천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입양을 ‘지방자치단체 신고’에서 ‘법원 허가’ 사항으로 바꾼 것 역시 함량 미달의 양부모를 걸러내는데는 효과가 크다”며 “하지만, 해외입양 시 외국인 부모들도 국내 법원에서 요구하는 모든 절차를 따라야 하게 되면서 아동과 가정을 연결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1~2년 늦춰지고 있어 개선해야 할 점”이라고 강조했다.

원조하는 나라 대한민국=김대열 회장이 홀트아동복지회와 함께했던 32년동안 시대마다 각기 다른 사회적 요구가 있었다.

그는 시대별로 주어지는 사회적 요구에 맞춰 자연스럽게 변하는 게 바로 사회복지기관으로서 홀트아동복지회가 걸어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김 회장은 “홀트아동복지회가 처음 설립된 1955년부터 1980년대까지는 활발한 입양 사업을 통해 아이들이 행복한 가정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소명이었다”며 “이후 사회가 발전하면서 홀트아동복지회의 역할 역시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우선 홀트아동복지회는 지난 1980년 전주영아원을 시작으로 전국 5곳에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아동 교육에 힘쓰고 있다. 김 회장 역시 지난 2006년 4월부터 경기 수원에 위치한 홀트어린이집 원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장애인복지사업도 주력 사업 중 하나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설립 이래 장애로 가정을 찾지 못하는 아동들을 위해 교육과 자립지원을 해오고 있다. 경기 일산에는 아동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가정이 없는 장애인을 위해 복지타운과 요양원을 운영 중이다. 현재 이곳에는 홀트재단 설립자의 딸이자 간호사인 말리 홀트(81) 홀트재단 이사장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돌보고 있다.

또, 지난 1975년 설립된 특수학교 홀트학교에서는 총 250명의 장애 학생들이 교육받고 있다. 이 밖에도 홀트아동복지회는 전국 5곳에 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하며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지난 1983년부터 시작한 장학사업을 통해 지난해까지 총 9048명의 학생에게 약 34억원의 장학금을 제공했다.

최근 김 회장이 공들이고 있는 부문은 바로 국제개발협력사업이다. 김 회장은 “지금까지 세계의 도움을 받던 한국이 눈부신 경제 발전을 통해 도약한 만큼 그동안 받은 도움을 돌려줄 수 있는 사업을 반드시 구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아동복지회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3세계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그것이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캄보디아, 몽골, 탄자니아 3개국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우선 캄보디아에선 홀트드림센터를 통해 연간 6만여명의 빈곤층 아동을 교육하고 있으며, 약 2만명의 아동이 혜택받는 무상급식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몽골에서는 빈곤아동에 대한 지원 뿐만 아니라 빈곤가정지원사업을 통해 가족 해체 예방에 힘쓰고 있으며, 탄자니아에서는 빈곤아동에 대한 기초교육 및 영양지원 사업을 실시 중이다.

▶봉사는 국민의 5대 의무=이런 그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 매우 박하다. 사회복지사업을 하고 있는 자신을 가리켜 남들이 “참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할 때마다 자꾸 쑥쓰럽다는 것이다.

그는 “입양과 관련된 기관에서 일하다보니 사회복지사로서 나 자신의 순간적인 판단이 입양되는 아이의 남은 인생을 결정하게 되고, 정작 판단의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는 점을 두고 오랜 시간 고민해왔다”며 “덕분에 사회복지사로서 자신을 돌아봤을 때 스스로 부끄럼 없도록 매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버텨왔고, 이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각지 또는 해외에서 봉사활동에 매진하며 살 것이라는 김대열 회장. 그는 봉사야말로 교육ㆍ근로ㆍ국방ㆍ납세와 함께 ‘국민의 5대 의무’라고 강조하며 “퇴임 후 ‘참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제목의 책을 만들어 그동안 살아온 날을 반성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복지사업 및 봉사활동에 나설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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