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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봅슬레이, 이젠 국산썰매로 정상 간다
봅슬레이 월드컵 아시아 첫金 위업
원윤종·서영우 위해 현대車 특별제작
27일 열리는 유럽컵대회 국산썰매로 출전
‘봅슬레이’ 공기저항 최소화 기술 집약
BMW등은 자존심 걸고 최고기술자 투입



“한국의 원윤종과 서영우가 세계 봅슬레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

봅슬레이 월드컵 아시아 첫 금메달을 딴 원윤종·서영우 선수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은 24일(한국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원윤종(31·강원도청)-서영우(25·경기도BS경기연맹)의 월드컵 사상 첫 금메달 소식을 전하며 이들이 봅슬레이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전했다.

‘썰매 불모지’였던 한국이 울타리를 넘어선 날이었다. 바로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주 휘슬러에서 열린 IBSF 2015-2016시즌 월드컵 5차 대회에서 우승(1,2차 시기 합계 1분43초41)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출신이 봅슬레이 월드컵에서 1위에 오른 건 처음이었다. 이들은 이튿날 6차 대회에선 아쉽게 9위에 그쳤지만 세계랭킹은 여전히 1위(1153점)를 지키고 있다. 세계 썰매계는 ‘기적’이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고 있다.

외국선수의 중고썰매를 타던 원윤종·서영우선수는 27일 열리는 유럽컵 대회에서 현대자동차가 특별제작한 썰매

원윤종과 서영우의 시작은 매우 초라했다. 중고교 체육 선생님이 꿈이었던 원윤종과 그의 성결대 체육교육과 후배였던 서영우는 우연한 기회에 봅슬레이 선수가 됐다. 2010년 ‘썰매 국가대표 선발’ 포스터를 보고 지원해 합격했고 그렇게 인생이 바뀌었다. 전용경기장은 물론 제대로 된 훈련장이나 썰매조차 없었다. 아스팔트에서 바퀴달린 썰매로 훈련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선수들이 타던 썰매를 중고로 구입해서 닦아 썼다. ‘한국판 쿨러닝’이라는 표현이 딱이었다. 썰매의 무게를 높여 조금이라도 더 스피드를 붙이기 위해 ‘살과의 전쟁’도 했다. 하루 8끼를 먹고 야식으로 꼬박꼬박 라면을 챙겨먹으며 많게는 20㎏ 이상 몸을 불렸다.

작은 대회를 시작해 실전 경험을 쌓아가던 이들은 입문 5년째인 올시즌 마침내 기적을 일궜다. 지난해 11월 29일 독일서 열린 월드컵 1차 대회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3위에 올랐고 2차 대회에서 또한번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 최정상 선수들이 총출동하는 월드컵에서 한국 봅슬레이가 거둔 역대 최고의 성적이었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사상 첫 1위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간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등은 봅슬레이를 비롯한 썰매에 많은 투자를 하기 시작했고 현대자동차와 LG전자, KB금융그룹, 대우인터내셔널, 아디다스 같은 기업들도 후원자로 나서 선수들에게 힘을 보탰다. 이달 초 별세한 영국 출신의 ‘명감독’ 맬컴 로이드 코치의 선진 기술 전수도 이들의 실력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스켈레톤의 윤성빈(23·한국체대) 또한 24일 휘슬러에서 열린 월드컵 6차대회서 동메달(1,2차 시기 합계 1분45초24)을 따내며 올시즌 5개 대회 연속 메달을 획득했다. 윤성빈은 ‘스켈레톤의 우사인 볼트’로 불리는 마르틴스 두쿠르스(32·라트비아)에 이어 세계랭킹 2위로 성큼 올라섰다.

2010 밴쿠버올림픽 때만 해도 출전 자체만으로 설렜던 이들이 이제 100년 역사의 유럽과 북미 선수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높게만 보이던 울타리를 넘어서 ‘그들만의 리그’에 합류한 순간이다. 이제 2년 앞으로 다가온 2018 평창올림픽서 메달 획득이 꿈만은 아니라는 기대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이제 ‘국산 썰매’로 세계 정상에 도전한다는 점이다.

‘겨울스포츠의 F1’으로 불리는 봅슬레이의 썰매엔 첨단 기술이 집약돼 있어야 한다. 많으면 19개의 커브구간이 있는 1200∼1500m의 코스를 시속 150km의 순간 최대 속도로 내려온다. 포뮬러 원(F1)을 방불케 하는 자동차과학의 정수가 봅슬레이에 담겨 있어야 하는 이유다.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인 BMW(독일 미국), 페라리(이탈리아), 맥라렌(영국) 등이 회사의 자존심을 건 최고의 기술력을 동원해 각국 대표팀의 봅슬레이 썰매를 제작한다. 탄소 섬유 재질의 썰매는 공기의 저항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이음새 하나 없는 일체형으로 설계되며, 대당 1억원~1억8000만원 정도다. 외국 선수들의 중고 썰매를 타던 원윤종과 서영우는 올시즌 네덜란드-라트비아의 합작 썰매를 타고 기적을 일으켰고 이제부터 현대자동차가 특별제작한 썰매를 탄다.

27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유럽컵 대회가 첫 테스트 무대다. 우리 선수들의 체형을 3차원(3D) 스캔 기술로 측정해 제작한 맞춤형 썰매라 부상위험도 적다. 실전 테스트를 거친 뒤 보완 작업을 통해 2년 뒤 평창에서 ‘금메달 썰매’로 태어나는 게 목표다. 불가능을 지운 한국 썰매의 기적은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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