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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얼푸드]든든한 위로의 한끼‘쿠바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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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아메리칸 셰프’로 유명세 쿠바 샌드위치…그 속엔 1900년대 담배공장 일꾼들의 애환이…


“푸드 포르노(Food Porno).”

지난해 이맘때 우리나라에도 개봉한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 대해 미국의 영화전문매체 ‘시네마블렌드’는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도넛 튀김인 비녜(Beignets), 유카 튀김, 안두이 소시지 등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줄지어 위벽을 긁고 지나가는 이 영화는 가히 포르노라는 표현이 넘치지 않을 정도의 ‘본격 침샘 자극 영화’다. 국내 광고 카피 역시 “빈 속으로 절대 보지 말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무수한 성찬들을 즐비하게 전시한 끝에 오히려 초라하고 소박하다 느껴질만한 샌드위치를 주인공으로 앞세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샌드위치라니… 출근길 편의점에서, 출출할 때 노점에서 사먹는 서민들의 음식이 이 위대한 포르노의 주인공으로 가당키나 하다는 말인가. 구운 빵 위에 이런 저런 재료를 아무렇게나 얹어 만들 수 있는 샌드위치는 한국 음식으로 치자면 냉장고에 남은 반찬 다 쓸어넣고 만든 비빔밥이나 김밥 같은 것이 아닐까.

영화는 이런 편견을 비웃듯 샌드위치를 열 음식 마다할 최고의 지위에 올려놓는다. 이야기는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 칼 캐스퍼가 한 음식 평론가로부터 자신의 요리에 대해 혹평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셰프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평론가와 다투고 레스토랑을 그만둔 칼은 푸드트럭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우연한 기회로 얻은 낡은 푸드트럭을 닦고 칠하며 단장하던 칼과 아들 퍼시는 중고차 가게 직원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지금껏 먹어본 샌드위치 중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겠다는 조건을 건다.

이렇게 탄생한 샌드위치가 바로 ‘쿠바 샌드위치(쿠바노스)’다. 영화는 칼이 돼지목살을 삶고, 모호(Mojo) 소스(올리브오일에 레몬, 식초, 마늘 등이 들어간 매콤한 맛의 쿠바식 소스)를 바르고, 프레서 플란차로 빵을 구워 샌드위치를 완성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림으로써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던 칼의 삶이 치유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칼은 소원했던 아들 퍼시와 함께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관계를 회복했고, 자신에게 악평을 날렸던 평론가를 후원자로 되돌려 놓는다.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치유, 희망, 사랑에 있는 만큼 쿠바 샌드위치의 이미지도 도저히 한번 맛보지 않고서는 못배길 정도로 풍성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쿠바 샌드위치 역시 서민들이 한 끼 간단히 때우기 위한 목적에서 유래했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쿠바 샌드위치는 1900년대 쿠바의 담배 공장, 사탕수수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즐겨먹던 것이다. 이들이 가까운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가 살기 시작하면서 쿠바 이민공동체를 중심으로 미국 사회에도 퍼져나갔다. 노동자들이 식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 먹기 시작한 음식이니 애초에 맛이나 풍미를 논할 요리는 아니었을 거다.

쿠바 샌드위치는 쿠바 빵을 프레서 플란차로 꾹 눌러 구운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쿠바 빵은 바게트와 치아바타의 중간 질감을 가진 흰 빵으로 밀가루 반죽에 돼지기름이 들어가 고소한 맛을 내는데, 프레서에 눌러 굽고 나면 겉은 바삭하면서도 안쪽은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이 빵 사이에 두툼하게 썰은 삶은 돼지고기를 모호 소스에 재워뒀다가 넣으면 쿠바 특유의 이국적인 향이 연출된다. 이밖에 치즈와 햄, 머스트드와 피클까지 더해지면 완성된다.

영화가 나온 뒤 국내에서도 쿠바 샌드위치는 유명세를 탔다. 가수 윤종신은 쿠바 샌드위치를 찬미하는 동명의 곡을 발표했고,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에는 어김없이 이를 메뉴로 내놓은 레스토랑이 들어선 상태다. 귤이 바다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국내에서 쿠바 샌드위치를 즐긴다는 것은 서민적이라기보다는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이들의 힙한 취향에 가깝다. 마가린 바른 철판에 구운 식빵과 계란후라이, 치즈를 포갠 노점 샌드위치가 저가 시장이라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헤밍웨이가 사랑했다는 모히또와 함께 쿠바 샌드위치를 곁들이는 일은 프리미엄 시장이라 할 만 하다. 가격도 1만원대 안팎이니 한 끼 가볍게 때운다는 의미는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신 <아메리칸 셰프>의 스토리가 덧씌인 한국에서 그것을 먹는다는 것은 소중한 사람과 기억에 남겨두고 싶은 특별한 경험을 함께 하고프다는 의미를 새롭게 입었다. 칼이 아들과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추억을 갖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인터넷 블로그에 남겨진 수많은 쿠바 샌드위치 경험담은 그것을 방증한다. 누군가는 분명히 위로받았고 사랑했었음을.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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