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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 죽이면 패륜 낙인…자식폭행·치사는 훈육차원?
孝 기반 부모살해땐 가중처벌
자식등 비속살해죄는 가중없어
훈육전제로 한 체벌 인식강해
전문가 “법조항 형평성 위배”지적



#. 아내와 별거 중이던 임모(47) 씨는 아내로부터 6살 난 아들이 며칠째 방과후 수업에도 안가고 친구들을 때리고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훈계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임씨는 “왜 엄마 말도 안듣고 친구들을 괴롭히냐”며 다그쳤지만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미리 준비한 당구 큐대로 아들의 엉덩이와 머리를 여러대 때렸다. 도망가려는 아들의 몸을 4~5차례 밀어 벽과 문 모서리에 부딪치게 했다. 아들은 다음날 새벽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받던 중 외상성 쇼크로 사망했다.


2011년 울산에서 발생한 위 사건은 최근 사회를 떠들석하게 한 경기도 부천 초등생 사건과 일부 닮아 있다. 부천 초등생 역시 숨지기 전날 아버지 최씨로부터 구타당했다는 사실이 어머니의 진술로 드러났고, 최씨는 아들이 거짓말을 하고 말을 잘듣지 않는다며 훈계 목적으로 자주 때린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 사건의 아버지 임씨는 1심 재판에서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가 적용돼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폭행치사죄가 적용된 부천 초등생 아버지 최씨도 혐의가 계속 유지될 경우 역시 살인죄에 비해 낮은 형량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다. 치사죄는 징역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기 때문에 징역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으로 규정된 살인죄보다 처벌 수위가 약하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부모에 의한 아동 사망사건에 살인죄를 적용하는 경우가 드물 뿐만 아니라 살인죄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부모가 자식을 죽인 ‘비속(卑屬)살해죄’에 대한 별도의 가중처벌 조항이 없다. 부모의 폭력을 ‘학대’가 아닌 ‘훈육’으로 보는 인식이 그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이경은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가해 부모의 법적 조치 분석’ 논문에서 “판결문을 보면 ‘훈육을 목적으로 했다고는 하나 타당하지 않다’는 식의 표현이 있는데 재판부가 ‘훈육을 전제로 한 체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울산 임씨 사건의 재판부 역시 판결에서 “어린 아들을 훈계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사안”이라고 표현해 이같은 인식을 드러냈다.

반면 자식이 부모를 죽인 범죄에 대해선 형법 250조 2항 ‘존속(尊屬)살해죄’를 적용해 일반 살인죄보다 엄격한 징역 7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있다. 존속을 대상으로 한 상해ㆍ폭행ㆍ협박ㆍ유기 등의 범죄도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라 가중처벌 받는다.

이렇게 유독 존속대상범죄를 가중처벌하는 배경엔 효를 강조하는 우리나라 유교적 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1953년 형법에 존속살해죄가 처음 포함됐을 때부터 양형기준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었을 만큼 존속대상범죄는 엄격히 다스렸다. 1995년에서야 징역 7년 이상이 추가되면서 형벌이 다소 완화된 것이다.

하지만 형평성 논란은 여전히 제기된다. 박찬걸 한양대 법학박사는 ‘존속대상범죄의 가중처벌규정 폐지에 관한 연구’ 논문을 통해 “반인륜성ㆍ패륜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존속살해와 비속살해는 차이가 없다. 부모를 살해한 자는 존속살해죄로 처벌하면서 자식을 살해한 자는 일반 살인죄로 처벌하는 건 신분적 도덕에 의해 형벌을 달리하는 것이므로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김현일 기자/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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