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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희롱 2차 피해 발표] 근로자 40% “성희롱 당해도 문제제기 안할것”
직장 내 소문ㆍ계약 해지 등 우려…넘어가는듯
‘피해자 의심하거나 참으라고 하는 경우’도 22.2%
2차 피해 가해자…당사자 28.2%ㆍ상급자 25.5%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직장인 A(여) 씨는 회식 자리에서 50대 임원 B씨에게 성희롱을 당한 사건만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난다. 직원들이 모두 보는 자리에서 공공연히 자신의 몸을 만진 가해자의 행동도 끔찍했지만 회사는 그가 회장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감싸고 돌며 오히려 자신을 다른 부서로 옮겼기 때문. 회사에 성희롱 관련 지침이 있었지만 담당 직원은 오히려 “A씨의 품행에 문제가 있다”며 시종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고 옮긴 부서에서는 A씨에게 과도한 업무를 떠맡겨 결국 퇴사해야만 했다.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하고도 제대로 된 구제를 받지 못하고 ’두번 우는’ 직장인은 비단 A씨 뿐만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1일 발표한 ‘성희롱 2차 피해 실태와 구제강화를 위한 연구’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희롱 2차 피해로 피해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근로자 10명 중 4명은 “성희롱을 당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소문이 퍼지거나 고용 상 불이익을 받는 것을 피해자들이 두려워 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성희롱 2차 피해란 성희롱 피해자가 오히려 비난을 받거나 업무상 불이익을 받는 것을 말한다. 


2차 피해 가해자…상급자 25.5%ㆍ동료 23%=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유형은 다양했다. 450명의 공공기관ㆍ사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중 33.8%인 152명이 “성적인 이야기나 농담을 듣고 불쾌했다”고 답했다. 외모, 옷차림, 몸매를 평가하는 발언을 듣고 불쾌한 경우는 30%에 달했고 회식 자리에서 술 시중이나 ‘블루스 춤’을 강요당했다는 답변도 14%로 나타나, 직장 내 성희롱이 유형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처럼 직장 내 성희롱이 횡행하고 있음에도 직장인 40.2%(181명)는 “성희롱을 당해도 문제 제기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나거나 계약 해지 등 고용 상 불이익을 당하는 등 2차 피해를 우려해서다. 회사에 알리더라도 회사가 무시하거나 가해자 편을 들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

실제로 성희롱 피해를 회사에 호소했다가 오히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불이익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성희롱 피해자에게 공감해주거나 지지해주는 대신 의심하거나 참으라고 한 경우가 22.2%로 2차 피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 등으로 성희롱을 축소 또는 은폐하거나 회사가 “성희롱은 개인적인 문제니 알아서 해결하라”고 회피한 경우가 각각 12.4%와 11.3%로 그 뒤를 따랐다. “회사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답변도 10.8%나 나왔다.

2차 피해를 가하는 당사자는 성희롱 가해자가 28.2%로 가장 많았지만 상급자나 동료도 각각 25.5%와 23%로 높게 나타났다. 피해자를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피해를 구제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더 괴롭힌다는 얘기다.

이희진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노무사는 “사건을 주변에 알리거나 회사에 공식적으로 접수, 처리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를 겪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이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10인 미만 사업장 “성희롱 예방 교육 받은적 없다” 64.5%=이처럼 성희롱과 그에 대한 2차 가해가 심각하지만 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은 미흡하다. 특히 규모가 작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일수록 성희롱 예방 교육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한 경우는 30.7%로 나타났다. 민간기업 전체에서는 45%가, 10인 미만 사업장은 64.5%가 관련 교육을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장 종사자일수록 성희롱에 노출될 확률이 큰 셈이다.

회사 내에서 성희롱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담당자들은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해 제대로 피해자들의 호소를 들어주고 가해자에게 적절한 징계를 내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성희롱 관련 업무를 담당한 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가 전체의 45%에 달했고 담당자 10명 중 9 명은 인사 담당자이거나 회사에서 발령을 냈기 때문에 관련 업무를 맡았을 뿐이라고 답했다.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교수는 “성희롱 피해자들은 해고 등 일반적인 징계를 받지 않더라도 폭언과 욕설, 괴롭힘 등의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들에게 가할 수 없는 불이익 조치의 유형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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